살아간다는 것이 어쩌면 전쟁터와도 같음을 느낄 때가 많다. 무한 경쟁의 시대에서 나의 실력이, 아이디어가, 상품이, 서비스가 상대보다 낫지 못하면 도태되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대부분 아이는 잉태되는 순간부터 태교를 시작으로 무한 경쟁에 돌입한다. 태중에서부터 아이를 조금이라도 더 잘 키우기 위해 산모는 좋은 것만을 보고 듣고 먹는다.    아이가 태어나면 이 같은 일은 더욱 심해지고 지나치리만큼 많은 돈을 들여가면서까지 과외를 받게 하는가 하면 최고의 아이로 키우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 덕분에 부모의 등골은 휘다 못해 부러질 지경이다. 심지어는 똘똘한 자식 하나가 그러지 못한 여러 자식보다도 낫다면서 한 명만을 낳아 몰방하는 예도 부지기수다. 여러 사회와 국가 간에 존재하는 각종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도 하겠지만 부모의 바람대로 아이들이 성장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그것을 생각하면 부모의 극성이 지나침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같이 모든 곳에 경쟁이 있음에도 학교만은 오히려 아이들에게 경쟁을 시키지 않으려고 하는 자가 많다. 그에 따라 초등의 경우는 경쟁은 고사하고 평가다운 평가마저 사라졌다.    수우미양가의 평어나 100점 만점의 수치로 나타내던 평가를 서술식으로 하게 한 이후로는 성적표를 받아 든 학생은 물론이고 학부모도 자녀의 성적이 어느 정도인지를 모르게 되었다.    더군다나 평가를 직접 한 교사조차도 서술식 평가만을 읽어보고서는 아이의 학력(學力)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가 없을 정도이니 말하여 무엇하겠는가. 이에 따라 공교육은 결국 신뢰를 잃게 되었고 경쟁력 없는 공교육은 아이들을 학교 밖 사교육으로 내몰고 말았다. 나아가서는 중고등학교 간의 서열마저도 사라지게끔 만든 평준화가 그렇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사회에 진출할 때면 경쟁에 적응을 제대로 하지 못해 그만 멘-붕에 빠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무한 경쟁의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아예 경쟁할 마음도 능력도 사라진 아이로 키운 결과이다.    더 나아가서는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한 집틀박 인생을 만들어 내기도 한 것이다. 운동회 달리기 시합에서 누구에게나 같은 등수를 줄 수는 없다. 1등이 있는가 하면 꼴찌도 있기 마련이다. 설령 달리기에서 꼴찌를 했다고 해서 자존감이 무너져 내린 나머지 학교생활을 하지 못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달리기만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기에, 달리기가 아니어도 잘할 수 있는 다른 무언가가 많기 때문이다. 지금의 우리는 학력(學歷) 인플레라는 심각한 문제를 지닌 시대에 살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되면 돈이 많아도 별 쓸모가 없듯이 학력(學歷)도 마찬가지이다. 더군다나 학력(學歷)에 걸맞은 실력이 없는 경우는 더더욱 그러하다. 대졸이라 해서 다 같은 대졸이 아니듯 고졸이라 해서 다 같은 고졸이 아니고 중졸과 초졸 역시도 매한가지이다.    너도나도 학력(學歷) 인플레이션을 만드느라고 도리어 사회에 진출하는 시기와 결혼 적령기를 늦추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학력(學歷)에 걸맞은 실력이 없음에도 웬만한 일자리는 쳐다보지도 않게 하였고 심각한 경제적 손실은 물론 출산 저하의 문제까지 나타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점을 생각한다면 초중고의 졸업장 수여 기준을 반드시 바꾸어야 할 필요가 있다. 같은 학제를 졸업하더라도 실력 차는 천양지차이기 때문이다. 또 필수 학습 요소의 성취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채 진급함으로 차상위 학습 요소를 학습함에 어려움을 갖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는 학습을 포기한 채로 학교에 다녀야 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천자문도 떼지 못한 학동에게 대학과 논어를 비롯한 사서와 오경을 가르치는 것과도 같다. 해서 졸업장은 일괄적으로 수여할 것이 아니라 졸업 검정시험을 쳐서 일정한 성취 기준 이상을 통과한 이에게만 졸업장을 주고 그러지 못한 이에게는 수료증을 주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할 때 학습에 대한 의욕이 더 생겨날 것이며 학력(學歷)이 늘어남에도 학력(學力)이 떨어지는 현상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철저한 평가와 검증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한계를 알아 가며 자신의 타고난 소질과 재능이 무엇임을 정확히 알고 계발해 나가는 그것이 우선 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결국 자기만의 경쟁력 강화는 물론이고 학력(學歷)에 영향을 받지 않고서 살아가는 시대가 열리며 학습을 포기하는 학생을 만들지 않는 길이 될 것이다. 평등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는 것이지 각자의 노력과 실력 여하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대하며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해서 저마다의 타고난 그릇과 분량대로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이 오히려 자존감을 높이고 누구나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라 믿는다.    뱁새에게 황새와 똑같이 뛰라고 하는 것은 누구 말마따나 한마디로 고문이다. 뱁새는 뱁새가 잘할 수 있는 영리함과 생존 능력의 타고난 모습대로 살아가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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