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대, 우리는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전 세계가 AI 패권 경쟁에 뛰어든 가운데, 한국형 거대언어모델(LLM, 이하 LLM) 개발 논의가 뜨겁다. AI가 인간과 유사하게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학습, 추론, 문제 해결 등을 수행할 기술이 필요하다. 이 중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하여 사람처럼 자연스러운 언어를 이해하고 다양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게 하는 핵심 기술이 LLM이다. 현재 LLM은 미국과 중국 등 글로벌 기업이 경쟁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활용하고 있는 LLM은 영어 등 서구권 언어와 문화에 최적화되어 있어 한국어와 한국 사회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존재한다.
이러한 현실에서 한국형 LLM 개발은 헌법상 정보 주권 확보를 위한 필수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LLM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 또한 선두 기업과의 기술 격차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비싼 비용을 들여 개발하기보다 오픈 소스 LLM과의 협력을 통한 기술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왜 한국형 LLM 개발이 필요할까? 한국형 LLM 개발이 필요한 이유는 다양하지만 크게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언어와 문화적 특수성을 들 수 있다. 한국어는 경어법, 조사, 어미변화 등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있다. 예를 들어 “김 과장님, 내일 회의 참석 하실 수 있으신가요?”라는 문장 하나에도 복잡한 사회적관계가 담겨있다. 외국 AI는 이런 미묘한 뉘앙스를 완벽히 이해하기 어렵다. 의료, 법률, 교육 등 정확한 의사소통이 중요한 분야에서는 이런 한계가 치명적일 수 있다.
둘째, 데이터 보안과 프라이버시 보호 문제이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AI 서비스는 입력 데이터를 해외 서버로 전송한다. 기업 기밀, 개인 의료정보, 정부 문서까지 외부로 유출될 위험이 존재한다. 이는 국가 안보와 관련된 민감한 정보, 개인정보 보호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한국형 LLM개발은 데이터를 국내에서 처리하고 민감한 정보 유출 위험에 대응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다.
셋째, 경제적 자립성 확보를 위해 필요하다. 현재 국내 기업들이 외국 AI 서비스에 지불하는 비용이상당한 수준에 달하고 있다. 앞으로 AI 산업이 더욱 활성화되면 지출 비용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체 기술 보유는 비용 절감은 물론 AI 기반 신산업 창출도 가능하게 한다.하지만 한국형 LLM 개발에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인 제약과 여러 도전과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선 막대한 개발 비용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GPT-4 수준의 모델 개발에는 수조원이 필요하다. 더구나 AI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므로 지속적인 투자가 필수다. 우리나라의 2024년 민간투자는 13억 3000만 달러로 전년 13억 9000만 달러보다 줄어들었다. 즉 국가 정책과 기업의 상황에 따라 대규모 투자가 계속 이루어질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현실이다.
또한 외국과의 기술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 구글, 오픈AI 등 선도 기업과의 기술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미국 스탠퍼드대 AI 인덱스 보고서 2025에 따르면 중국과 미국의 최고 AI 간 성능 차이는 2025년 2월 기준 1.7%로 줄어든 반면 우리나라는 답보 상태로 나타났다. 이러한 기술 차이를 단기간에 따라잡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무리한 추격보다는 특화 분야를 찾는 것이 현명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환경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대규모 AI 학습에는 엄청난 전력이 소비된다. GPT-3 모델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소비되는 에너지와 탄소 배출량은 덴마크 가정 126가구가 1년간 소비하고 배출하는 양과 맞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탄소중립을 추구하는 현재 시대에 에너지 효율성을 고려하지 않는 개발은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제약을 극복하고 한국형 LLM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모든 것을 우리손으로 개발하기보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우선 핵심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 공공 서비스, 의료, 법률, 교육 등 한국만의 특수성이 필요한 분야에 특화된 AI부터 개발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범용 모델 보다는 도메인 특화 모델 개발이 비용 대비 효과가 높을 수 있다.
그리고 국제 협력과 자주 개발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기초 기술은 해외 오픈소스를 활용하되, 한국어 처리와 응용 분야는 자체 개발하는 하이브리드 전략이 효율적이다. 일본, 대만 등 비영어권 국가들과의 기술 동맹도 고려할 만하다.
마지막으로 민간 주도, 정부 지원 방식이 바람직하다. 정부가 직접 개발하기보다는 규제 완화, 데이터 개방, 인프라 지원 등으로 민간 혁신을 촉진해야 한다. K-AI 바우처, AI 규제 샌드박스 등이 좋은 사례다.
한국형 AI 개발은 중요한 과제다. 하지만 맹목적 추진은 위험하다. 우리의 강점(우수한 IT 인프라, 높은 교육 수준, 활발한 디지털 문화)을 활용하되, 약점(작은 내수시장, 부족한 원천기술)을 인정하고 보완해야 한다.
현실적 목표 설정이 중요한다. 당장 GPT-4를 뛰어넘겠다는 목표보다는, 한국 사용자에게 가장 유용한AI를 만드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 대기업, 스타트업, 대학, 연구소가 협력하는 개방형 혁신 체계가 필요하다. 데이터와 모델을 공유하고,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가 중요하다.
필수적으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AI는 일자리, 프라이버시, 윤리 등 민감한 이슈와 연결된다. 투명한 개발 과정과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필수다.
무엇보다 AI는 목적이 아닌 수단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 삶을 더 편리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AI, 우리 언어와 문화를 지키면서도 세계와 소통하는 AI, 그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한국형 AI의 모습이다.
이제 시작이다. 완벽한 계획을 기다리기보다는, 작은 성공을 쌓아가며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되 실패에서 배우는 자세, 그것이 AI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지혜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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