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0월 천년고도 경주에서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채 석 달도 남지 않은 가운데 지금까지 드러난 준비 상황은 기대보다 우려를 낳고 있다. 특히 주요 행사장의 공정률은 아직 20~40% 수준에 머물러 있고, 숙박·교통·홍보 등 핵심 요소 전반이 미흡하다. 국제적 외교무대이자 국가의 명예가 걸린 APEC 정상회의가 자칫 ‘잼버리 사태’처럼 실패한 국제행사로 기록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경주는 세계 21개국 정상과 고위 인사, 4천여 명의 미디어 관계자가 모이는 외교 중심지로 부상할 중대한 기회를 앞두고 있다. 그러나 회의의 상징적 공간이 될 국립경주박물관 만찬장은 아직 공정률 20%대에 불과하고, 미디어센터 역시 공정률 40%에 머물러 취재 인력 수용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에 경주지역 숙박 인프라 부족 문제까지 더해져, 정상급 인사들이 머무를 호텔조차 확정 짓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등 주요국 정상 초청도 지연되면서 외교무대의 중심축조차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실정이다.준비 지연의 책임은 단지 경북도나 경주시만의 몫이 아니다. 지난해 말 계엄 사태와 정권 교체로 인한 국정 공백, 중앙정부 간 행정 협의 지연, 외교부·문체부·문화재청 간 소통 부족 등이 얽히며 전체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가장 큰 문제는 이처럼 중대한 국가 행사를 지방정부에 과도하게 떠넘기고 있다는 구조적 현실이다. 국비 지원이 턱없이 부족해 경북도와 경주시의 예산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더 심각한 문제는 APEC 개최 사실조차 모르는 국민이 태반이라는 점이다. 제대로 된 홍보는커녕 국내 여론조성도 이뤄지지 않아, 대한민국이 20년 만에 의장국으로 주최하는 외교 행사라는 사실조차 희미한 상태다. 이미 국회 APEC지원특위와 정치권에서는 반복적으로 홍보 예산 증액을 요구했지만, 정부의 2차 추경안에는 관련 예산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국내외적으로 APEC의 외교적, 경제적 성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정부와 국회는 더 이상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APEC 정상회의는 단순한 국제행사가 아니다. 이는 대한민국의 국격을 상징하고, 경북과 경주가 세계 무대에서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기회다. 국회 예산결산특위는 이번 추경 심사에서 APEC 관련 예산을 반드시 반영해야 하며, 정부 역시 관계 부처 간 유기적인 협업체계를 통해 의사결정 속도를 높여야 한다. 또한 숙소·교통·의전 등 주요 현안은 계속해서 점검하고, 필요시 민관합동 비상 대응체계를 가동해야 한다.
잼버리 파행은 미숙한 준비가 어떤 국제적 망신을 불러오는지를 온 국민이 목격한 사례였다. 경주 APEC은 그런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정치적 책임 떠넘기기나 형식적인 대응이 아니라, 실질적인 예산 지원과 집중적인 실행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경주는 물론, 대한민국 전체의 대외 신뢰도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비상계엄과 탄핵, 조기대선으로 7개월을 허비, 남은 시간조차 많지 않다. 정부가 나서 전면적 정비와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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