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부터 시작된 산딸기와 복분자 수확은 삼복더위 속에서도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다. 수확이 끝났다고 일이 끝난 건 아니다. 구초를 자르고, 자른 가지는 모아 치워야 하며, 수명이 다한 가지는 뽑아내고, 뿌리까지 캐어내야 한다. 음식을 만드는 것보다 설거지가 더 귀찮듯, 열매를 따고 난 뒤의 뒷정리는 장아지매의 손마디를 더 아프게 한다.땀이 줄줄 흐르는 밭머리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그때 문득, 정자 너머로 시선이 멈춘다. 하얗고 수수한 꽃송이들이 종처럼 달린 채 조용히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초롱꽃이다.초롱꽃은 이름 그대로 ‘초롱불’을 닮은 꽃이다. 어린 시절, 엄마가 마실을 나갈 때 들고 다녔던 초롱불. 전기가 들어오기 전, 초를 넣어 만든 등불은 밤길을 비추는 유일한 빛이었다. 어둠을 가르며 깜빡이던 그 불빛처럼, 초롱꽃도 조용한 등불처럼 피어 있다.하얀 모시옷 같은 꽃잎은 순하고 단아하다. 고개를 숙이고 피어나는 그 자태는 마치 누구보다 성실히 살아온 사람의 뒷모습처럼 느껴져 그 앞에 서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차분해지고 고요해진다. 무더위에 지치고 일에 허덕이던 장아지매의 숨결에, 초롱꽃은 조용히 빛을 건넨다.초롱꽃의 꽃말은 ‘감사’, ‘성실’, ‘변치 않는 사랑’이다. 그 조용한 모습과 달리 그 안엔 깊은 뜻이 담겨 있다.화려한 장미처럼 사랑을 외치진 않지만, 작은 존재로 묵묵히 곁을 지키는 진심이 바로 초롱꽃의 언어다. 그래서일까. 초롱꽃을 보고 있으면,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타인의 마음을 비추는 사람이 떠오른다. 마치 한 켠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우리네 시골 어르신들처럼.이 초롱꽃은 라틴어로 ‘캄파눌라(Campanula)’, 즉 ‘작은 종’이라는 뜻을 지닌다. 서양에서도 이 꽃은 ‘인내하는 사랑’과 ‘희망의 상징’으로 여겨져 수도원의 정원이나 시골 담장 곁에 자주 심어졌다고 한다.한국에서는 꽃의 모양이 전통 등불인 초롱을 닮았다고 하여 ‘초롱꽃’이란 이름이 붙었고, 어릴 적 초롱불 아래에서 동생들과 그림자놀이를 하던 추억이 오롯이 그 꽃 속에 담겨 있는 듯하다.요즘은 가로등이 없는 길이 드물다. 빛은 넘치고 넘쳐 어둠조차 사치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그 많고 큰 빛 속에서도 이 조그맣고 고요한 초롱꽃이 주는 ‘마음의 빛’은 결코 작지 않다. 세상의 밝음은 거대한 전구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렇게 조용히 피어 있는 존재 하나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걸 이 꽃은 말없이 가르쳐 준다.장아지매의 거칠고 마른 손마디에는 아직도 흙이 묻어 있고, 밭일은 끝이 없지만, 그럼에도 초롱꽃 앞에서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그 하늘 아래, 작은 꽃 하나가 피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오늘 하루를 버틸 힘이 생긴다.오늘도 나는 오가향 마당 끝, 바람결에 조용히 흔들리는 초롱꽃을 바라보며 다짐한다.화려하지 않아도 좋다. 누군가의 마음 한쪽에 작은 등불 하나 켜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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