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매일신문=신일권기자]그동안 직진만 하던 전자가 교차로에서 방향을 바꾸고 다양한 길을 선택할 수 있게 됐다. 최근 POSTECH(포항공과대학교) 물리학과 이길호 교수 연구팀, KAIST(한국과학기술원) 조길영 교수 연구팀, 일본 국립재료과학연구소(NIMS)이 그래핀을 이용해 전자의 에너지 상태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새로운 양자 소자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이번 연구는 국제 학술지인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Science Advances)’에 최근 게재됐다. 우리가 쓰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속 전자는 회로라는 길을 따라 질서정연하게 움직인다. 하지만 양자 세계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전자는 마치 동시에 여러 길을 가는 것처럼 행동하며, 이러한 양자의 특성 활용하면 기존 컴퓨터보다 훨씬 강력한 양자컴퓨터를 만들 수 있다. 이번 연구의 핵심은 `3단자 조셉슨 접합(Josephson junction)`이라는 특별한 구조다. 조셉슨 접합은 두 개의 초전도체 사이에 얇은 전도성 재료를 끼워 만든 양자 소자로 연구팀은 세 개의 초전도체를 삼각형 모양으로 그래핀 위에 배치해 전자가 다양한 방향으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었다. 기존의 구조가 일직선 고속도로였다면, 이번에는 사방으로 뻗은 교차로가 새로 열린 셈이다. 연구팀은 전극 사이에 흐르는 양자 위상차를 정밀하게 조절해, 특정 지점에서 전자의 성질이 완전히 바뀌는 ‘위상 전이(topological transition)’ 현상도 관측했다. 마치 물이 얼음이나 수증기로 바뀌는 것처럼, 전자 행동이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변화다. 이 현상을 확인하기 위해 연구팀은 마이크로전자볼트(μeV) 정밀도를 가진 장비를 활용해 실시간 관측에도 성공했다. 가장 주목할 점은, 자연에 없는 전자의 에너지 구조를 실험실에서 설계했다는 것이다. 마치 건축가가 아파트 층을 원하는 대로 정하듯, 전자가 머무를 수 있는 에너지 수준도 새롭게 디자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기술이 전자의 움직임을 정밀하게 제어하는 데 활용되면, 더욱 안정적이고 성능이 뛰어난 양자컴퓨터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 POSTECH 이길호 교수는 “이번 연구는 미래 양자 기술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특히 오류에 강한 양자컴퓨터 구현의 핵심으로 꼽히는 ‘마요라나 준입자(Majorana quasiparticles)’를 실제로 만들 수 있는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라고 전했다. 한편, 이 연구는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 한국연구재단,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 기초과학연구원, 삼성전자, 일본 학술진흥회(JSPS KAKENHI) 및 일본 문부과학성 WPI 사업 등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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