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의 삶은 극적인 서사를 품고 있다.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경기도 성남의 빈민가에서 성장한 그는, 가난과 노동, 차별과 좌절을 이겨내고 결국 대한민국의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이 여정은 단순한 성공담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어두운 이면과 가능성을 동시에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소년 이재명은 중학교 졸업 후 공장에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도왔다. 열세 살의 나이에 공장 소년공으로 들어가 뜨거운 기계 앞에서 쇳물을 다루고, 독한 약품 냄새에 눈을 비비며 하루하루를 견뎠다. 학업을 이어갈 형편이 되지 못했지만, 그는 밤에는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낮에는 작업복을 입은 채 기계 앞에 섰다. 그가 선택한 고된 길은 단지 개인의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 속에는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대변하고자 하는 갈망이 서려 있었다.
결국 그는 검정고시를 통해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중앙대학교 법학과에 진학했다. 노동자의 손으로 쟁취한 입학이었다. 이후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가 되었고, 그는 자연스레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특히 성남지역 빈민가의 철거민, 노점상, 장애인들의 법률 대리인을 자처하며 지역사회에서 이름을 알렸다. 그리고 이 시절의 활동은 훗날 정치인의 밑거름이 됐다.
2006년, 성남시장 선거에서 낙선한 뒤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2010년, 성남시장에 당선된 그는 “복지 성남”을 외치며 무상급식, 무상교복, 청년배당 등을 추진했다. 당시에는 과감하고 선명한 정책으로 찬반이 엇갈렸지만, 시간이 흐르며 이 정책들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그의 행정 스타일은 실용적이면서도 진보적이었다. ‘이재명다움’이라는 신조어는 그렇게 생겨났다.
성남시장, 경기도지사를 거치며 그는 전국적 인물로 성장했다. 특히 코로나19 시기, 경기도의 신속한 재난지원금 정책은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화법, 강한 추진력은 지지자들에게는 매력으로, 반대자들에게는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논쟁의 중심에 서 있었다.
대통령 선거에서의 두 번의 도전도 드라마틱했다. 첫 번째 도전에서는 아깝게 고배를 마셨지만, 그는 곧바로 다시 일어섰다. 두 번째 도전에서는 경제 위기와 민생 문제를 정면으로 내세우며 유권자의 선택을 받았다. 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 이재명. 그는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보기 드문, 비주류에서 주류로 올라선 인물이다.
그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국정 운영은 순탄치 않았다. 국내외 경제 위기, 양극화, 청년 실업, 기후 변화, 안보 위기 등 복합적인 과제들이 산적해 있었고, 대통령 이재명은 강한 추진력과 민생 중심의 메시지로 대응에 나섰다. ‘약자의 나라, 기회가 공정한 나라’를 국정 비전으로 내걸고, 대통령은 복지 확대와 사회적 안전망 강화를 선언했다.
그의 대표 정책 중 하나는 ‘기본사회’ 구상이었다. 기본소득, 기본주택, 기본금융 등 모든 국민이 최소한의 삶을 누릴 수 있게 하겠다는 정책 비전은 정치권의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대통령은 정책의 방향을 분명히 했다. “기회는 공정하게, 과정은 투명하게, 결과는 최소한의 인간 존엄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은 행정 전반에 반영되고 있다.
물론 정치적 대립과 검찰 수사, 언론의 공격 등 현실 정치의 벽은 여전히 높았다. 대통령 이재명은 종종 ‘사법 리스크’라는 그림자 속에서 국정을 이끌어야 했다. 야당과의 대화, 여당 내 조율, 국민 여론과의 간극 속에서 그는 자신만의 정치 언어로 답을 모색했다. 때로는 단호하게, 때로는 유연하게.
소년공에서 대통령까지. 이재명 대통령의 인생은 누군가에게는 꿈이고, 누군가에게는 논쟁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의 삶은 한국 사회가 품은 모순과 가능성, 그 양극단을 동시에 품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절반의 임기를 지나며, 그는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을까. 기자로서 그 다음 페이지가 여전히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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