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공산 국가들의 몰락이 진행되던 1980년대 후반, 가장 충격적인 사건으로 기억되는 것은 1989년 12월 25일 루마니아의 철권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자국 군대에 의해 처형되는 장면이다. 차우셰스쿠는 루마니아 공산당 중앙위원, 정치국원, 서기장을 거쳐 1967년 국가평의회 의장(대통령)이 된 후 4선 동안 독재를 한 인물로서, 북한 김일성 왕조와 견줄 정도로 통치 방법이 잔인하기로 유명했다.   차우셰스쿠는 주민들은 굶어 죽은 상황에도 가족들과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면서 내부 반발을 우려해 핵심 관리들을 철저하게 감시했다. 그의 절대 권력 아래 루마니아 모든 이들은 하수인으로 전락했다. 개인숭배에도 앞장섰던 차우셰스쿠는 결국 봉기한 시민군에 의해 사형 선고를 받고 아내 엘레나와 함께 총살당한다. 화려했던 독재자의 비참한 최후다.   북한은 1972년 이후 공산주의 대신 주체사상을 채택해 김일성 왕조 체제를 구축하고 세계 공산주의 역사상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3대 세습체제를 구축하였다. 차우셰스쿠는 70년대 초 북한을 방문하고 바로 이 주체 우상화를 그대로 도입했다고 한다. 차우셰스쿠가 배운 또 다른 북한식 권력 유지 방식은 정적 숙청과 충성 경쟁, 그리고 철저한 주민 통제이다.   김일성은 1949년 9월 9일 소련의 지원으로 초대 북한 수상에 오른 후, 8월 종파 사건(1956년), 갑산파 숙청 사건(1967년) 등을 통해 정적들을 모조리 제거하고 최고지도자로 등극하였다. 김정일 역시 1970년 후계자로 공식화된 이후 1980년대에 실질적 2인자가 되는 과정에서 숙부인 김영주와 이복형제인 김평일 등 경쟁자나 정치적 반대 세력을 모두 없앴다. 김정은도 김정일 사후 리영호와 장성택, 현영철과 최태복 등을 숙청하면서 핵심 권력 기관인 당과 군부를 장악하였다.   그러나 차우셰스쿠가 그러했듯이 영원한 절대 권력은 없다. 요즘 김정은의 수행단이 단출해졌다. 수행을 도맡았던 고위 간부들이 몇 달 사이 연이어 공식 석상에서 자취를 감추면서이다. 가장 주목받는 인물은 김정은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조용원 당 조직비서다. 숙청인지 혁명화 교육 내지는 단순한 징계인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정권 안정기로 평가되는 집권 14년 차에도 엘리트들의 경쟁과 `상호 검열`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권력 재편이 이뤄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북한의 충성 집단에도 이상 기류가 감지된다. 북한은 당과 군부 이외에 사회 통제기구인 사회안전성 및 국가보위성과 비밀정보기관인 정찰총국을 두고 있다. 이 모두가 김정은 직속 기관이다. 평양시 고위급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이중 정찰총국 소속 군관 20여 명이 지난해 하반기에 러시아 파병 명령에 의문을 표현했다가 조사를 받고 가족과 함께 정치범 수용소로 이송됐다고 한다.   이는 북한 내 엘리트조차 병사들을 사지로 모는 파병에 반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북한 당국은 이를 ‘전사적 자세 미흡’ 사례로 규정하며 정신교육을 강화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이는 내부 불만이 ‘개별적’이 아니라 확산 가능성이 있는 ‘조직적’ 동요로 판단하고, 핵심 체제 유지 기관의 충성도마저 의심하면서 공포정치의 수위를 끌어올리려는 조치로 보인다.   이런 일련의 조짐은 북한이 체제 자체가 갖는 불안 요인과 함께 러시아 파병 등에 따른 민심 동요로 인해 엘리트 갈등과 군부 불만이 나타나고 있다는 반증일 수 있다. 물론 북한 체제가 단기간 내에 붕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다. 철저한 정보 차단과 감시체계, 공포정치와 숙청의 반복, 강력한 가족 연좌제 등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재자 1인에 대한 충성만으로 유지되는 체제는 장기적으로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통제 수단은 단기적으론 효과가 있겠지만 반복되면 여러 가지 부작용을 초래하게 된다. 이 같은 흐름은 권력 집중 강화, 숙청 확대, 체제 피로 누적이라는 악순환 구조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 3대에 걸친 김일성 왕조 체제에 균열이 생기고, 북한 주민들이 압제에서 벗어날 날이 과연 올 수 있을까 하는 섣부른 기대를 해본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 제보하기
[메일] jebo@ksmnews.co.kr
[카카오톡] 경상매일신문 채널 검색, 채널 추가
유튜브에서 경상매일방송 채널을 구독해주세요!
댓글0
로그인후 이용가능합니다.
0 / 150자
등록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름 *
비밀번호 *
비밀번호를 8자 이상 20자 이하로 입력하시고, 영문 문자와 숫자를 포함해야 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복구할 수 없습니다을 통해
삭제하시겠습니까?
비밀번호 *
  • 추천순
  • 최신순
  • 과거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