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15일, 포항에서 발생한 규모 5.4의 지진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었다. 정부가 주도한 지열발전사업의 시추 작업이 원인이 된 인공 지진, 이른바 ‘촉발지진’이었다는 점이 2019년 3월 정부조사연구단의 공식 발표로 드러났다. 조사단은 “지열발전소의 물 주입이 지하 단층의 응력을 변화시켜 지진을 유발했다”고 명확히 결론 내렸다. 이는 대한민국 정부가 인정한 인재(人災)임을 뜻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13일 대구고등법원이 포항 시민 111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1심 판결을 파기하고 국가의 배상책임을 부정한 것은, 정의와 상식에 반하는 결정이라 아니할 수 없다. 법원은 지열발전소 설계와 과제 선정에 일부 과실은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공무원이나 관련기관의 과실을 인정할 만한 충분한 입증자료가 없다며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했다. 이는 국가 스스로가 국가 주도 조사 결과조차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기모순적인 태도이며, 7년 6개월째 고통 속에 사는 시민들에게 또 한 번의 절망을 안겼다.포항 지진으로 인한 피해는 막대했다. 이재민 1797명, 공공시설 및 주택 5만여 건의 피해, 흥해실내체육관 등 5개소가 장기 대피소로 운영,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속적인 불안과 트라우마는 단순한 물리적 피해를 넘어서는 고통이었다. 특히 진앙지인 흥해읍 주민들은 지진이 날 때마다 심리적 불안과 공황 상태에 빠지는 등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으며, 일부 주민은 여전히 심리 치료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그런데도 법원이 “직접적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논리를 내세워 국가의 책임을 부정한 것은, 결국 ‘국가의 책임 회피’를 법적으로 정당화한 선례로 작용할 위험이 있다. 정부의 공공사업으로 인해 명백한 피해가 발생했음에도 이를 개인이 입증하라는 것은 실질적 정의 실현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2023년 11월, 대구지법 포항지원은 시민 1인당 200만~300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리며 국가의 과실과 시민들의 정신적 피해를 부분적으로 인정했다. 이러한 상식과 진실에 부합한 판결과 달리 항소심은 이를 뒤집고 시민의 피해 구제를 부정했다. 포항지진범시민대책본부(범대본)와 포항11·15 촉발지진범시민대책위원회(범대위)를 비롯한 지역 시민단체들은 이번 판결에 깊은 유감을 표하며 정부에 진심 어린 사과와 실질적 배상,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향후 또 하나의 사례가 될 이번 재판은 단순히 배상금 지급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국가가 어떻게 대하는지를 확인시켜주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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