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향 정자 앞에는 박태기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어느 해인가 남편이 심어 놓은 나무다. 처음엔 꽃이 예뻐서 심었다고 했다. 정자 가장자리, 볕이 잘 드는 자리를 골라 조심스럽게 옮겨 심던 남편의 뒷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물조리개를 들었고, 계절은 몇 번이나 바뀌었다.올해도 어김없이 박태기나무가 꽃을 피웠다. 작고 앙증맞게 뭉쳐 핀 꽃들은 자줏빛 물감을 튀긴 듯 나무에 다닥다닥 붙어 있다. 꽃이 피기 전, 꽃봉오리는 꼭 밥알처럼 생겼다. 그래서 예전엔 밥풀데기, 밥티기라 불리다가 지금의 ‘박태기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꽃봉오리를 ‘구슬 같다’고 하여 ‘구슬꽃나무’라 부른다는데, 그 이름이 더 예쁘게 들린다. 또 ‘유다나무’라 불리기도 한다. 예수를 배반한 유다가 목을 맸다는 전설 때문이다. 열매는 길쭉한 꼬투리처럼 생겨 ‘칼집나무’란 별명도 있다.박태기나무는 향기로 사람을 부르는 분꽃나무와는 다르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화사한 자줏빛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붙든다. 예전에는 가까이 다가가야만 그 꽃이 예쁘다고 느꼈는데, 이제는 멀리서 바라봐도 아름답다는 걸 알겠다.박태기나무는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 초봄, 앙상한 가지 끝에 붉은 빛이 번지기 시작하면 봄이 왔음을 알 수 있다. 가지뿐 아니라 몸통까지 꽃이 피어나는 그 모습은 마치 나무가 온몸으로 봄을 밀어내는 듯하다. 줄기에서 바로 피어나는 꽃들은 상처난 곳에서 돋아난 듯 특별한 인상을 남긴다. 오래 묵은 말 한마디가 조심스레 입 밖으로 흘러나오는 순간 같기도 하다.박완서의 단편 「친절한 복희씨」에는 박태기나무꽃이 첫사랑의 떨림으로 등장한다.“나는 내 몸이 한 그루의 박태기나무가 된 것 같았다. 봄날 느닷없이 딱딱한 가장귀에서 꽃자루도 없이 직접 진홍색 요요한 꽃을 뿜어내는 박태기나무, 헐벗은 우리 시골 마을에 단 한 그루의 꽃나무였다. 내 얼굴은 이미 박태기꽃 빛깔이 되어 있을 거였다. 나는 내 몸에 그런 황홀한 감각이 숨어 있는 줄은 몰랐다.”그 구절을 떠올리면, 나무 한 그루에 스민 황홀함이 마음으로 스며든다.박태기나무꽃이 가장 아름다울 무렵, 문득 남편이 생각났다. 바쁜 일상 속에 미처 묻지 못한 말들, 제대로 건네지 못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꽃잎 사이로 비집고 나온다. 해마다 꽃은 점점 풍성해졌고, 그만큼 내 마음에도 무언가 쌓여갔다. 후회도, 사랑도 아닌, 그저 삶이었다.정자에 앉아 박태기꽃을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해진다. 새소리도, 바람 소리도, 모든 소음이 꽃잎 속으로 스며들고, 그 고요함이 마음에 남는다.남편이 심어 놓은 그 나무는 이제 우리 둘의 시간을 품고 있다. 말없이 봄을 알리고, 조용히 마음을 다독이는 나무. 오가향 정자 앞, 그 나무 아래에서 나는 오늘도 작은 평화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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