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은 어린이날이다. 공원에는 풍선이 날리고, 케이크 위 촛불이 꺼지기 바쁘게 웃음소리가 번진다. 그러나 이 축제의 한켠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또 다른 ‘아이들’이 존재한다. 법의 경계선 안쪽, 교정 시설이라는 이름 아래 살아가는 아이들. 그들도 우리 사회가 보호해야 할 소중한 존재다.
내가 근무했던 대구 인근의 한 교도소. 그곳에 14살의 소년이 성폭력 혐의로 수감된 일이 있다. 체구는 작고, 얼굴은 앳되며, 두꺼운 안경 너머의 눈빛은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초등학생이라 해도 믿을 만큼 어린 이 아이는, 범죄자라는 이름으로 세상과 격리되었다. 그러나 한 노년 교도관이 아이에게 건넨 첫 말은 훈계도, 질책도 아니었다. 그것은 조용한 ‘포옹’이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작지만 깊은 응답이었다.그로부터 1년 후, 우리는 ‘N번방 사건’이라는 디지털 성범죄의 민낯을 목도하게 된다. 기술의 익명성과 무책임이 낳은 비극이었다. 사회는 들끓었고, 엄벌과 제도 개선이 쏟아졌다. 하지만 교도소라는 사법 집행의 최전선에서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형벌만으로 이 비극을 막을 수 있는가?N번방은 단순한 일탈이 아니다. 그것은 교육의 부재, 왜곡된 성 인식, 그리고 방치된 청소년 심리가 만들어낸 구조적 붕괴의 결과다. 더 빠른 인터넷보다, 더 높은 해상도보다 앞서 필요한 것은 ‘범죄적 인성’을 예방하고 치유하는 사회적 백신이다. 우리 사회는 너무 오랫동안 처벌에만 기대어 왔다.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범죄자가 아니다. 환경과 교육, 그리고 어른들의 책임 방기로 인해 어긋난 길로 접어든다. 교도소는 그 아이들이 다시 `사람`으로 돌아올 수 있는 마지막 공간이다. 그렇기에 이제 교정 시설은 단순한 처벌의 공간이 아니라, 예방과 치유, 회복을 위한 교육적 전환의 전초기지가 되어야 한다.회복적 사법, 성 인식 개선 교육, 공감 능력을 키우는 심리 상담 등은 단지 옵션이 아니라 필수다. 포스트 휴먼 시대, 우리는 기술의 진보를 자랑하지만, 윤리와 공감이 따라오지 못한다면 그 진보는 허상일 뿐이다. 공자가 살아 있었다면, 분명히 말했을 것이다. “인(仁)이 빠진 지식은 오히려 해롭다.”어린이날에 우리가 보호하고자 하는 ‘아이들’의 범주는 이제 넓어져야 한다. 공원에서 뛰노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교도소 담장 안에서 울고 있는 아이들까지 품을 수 있을 때, 이 날은 비로소 진정한 의미를 지닌다.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사회.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야 할 미래다.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