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 당시, 고인의 시신은 이미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다.”지난달, 서울의 한 빌라에서 홀로 숨진 채 발견된 70대 노인의 사망 보고서 일부다. 신고는 이웃의 민원으로 시작되었다. “며칠째 냄새가 심하게 난다”는 말. 그 말 한마디가 아니었더라면, 노인의 죽음은 훨씬 더 뒤늦게야 발견됐을지도 모른다.고독사. 사전적 정의는 간단하다. ‘홀로 쓸쓸히 죽는 것.’ 그러나 이 한 단어 속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무게가 담겨 있다. 단절된 삶, 무연(無緣)의 시간, 그리고 아무도 곁에 없는 죽음. 물리적 생명이 멈춘 순간보다 더 서글픈 건, 그 고요한 죽음을 알아채는 이조차 없다는 현실이다.2025년 현재, 우리 사회에서 고독사는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에서만 1,200여 명이 혼자 생을 마감했다. 이 중 대부분은 노년층이지만, 40~50대 중장년층의 비율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일자리, 가족, 친구… 삶을 지탱하던 연결 고리가 하나둘 끊기면서, 사람들은 점점 더 ‘고립’으로 밀려난다.눈여겨봐야 할 것은, 이들의 외로움이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고독사를 “사회적 실패의 결과”라고 말한다. 단지 누군가의 운이 나빠 일어난 일이 아니라, 공동체의 기능이 무너진 채 방치된 결과라는 것이다. 이웃과의 관계, 지역 공동체, 공공의 돌봄 체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사람은 점점 더 고립된다.기자는 한 중년 남성을 만난 적이 있다. 자녀와의 연락이 끊긴 지 5년째, 퇴직 후 이렇다 할 사회적 활동도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는 말했다. “죽는 게 두렵진 않아요. 다만… 아무도 모르게 죽을까 봐 그게 더 무섭죠.”그 말은 가슴을 깊게 찔렀다. 죽음보다 더 큰 외로움. 그것이 바로 지금 이 시대, 우리가 마주한 진짜 공포다.정부는 최근 ‘고독사 예방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지자체마다 고독사 위험군을 조기에 발굴하겠다고 밝혔다. 앱을 통한 안부 확인, 생활관리사 파견, 공공임대주택 내 커뮤니티 조성 등 다양한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외로움은 행정적 숫자로 관리될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우리가 다시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당신은 요즘, 누구의 안부를 물어본 적이 있는가?’무심코 지나친 이웃, 말없이 퇴근한 직장 동료, 오랜만에 떠오른 친구의 이름. 외로움은 그 틈 사이에 자리 잡는다. 거창한 계획이 아니어도 된다. 눈을 맞추고 인사를 건네는 일, 따뜻한 말 한마디, 가끔의 연락. 그 작은 연결이 한 사람의 삶을 바꿀 수도 있다.기자가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어딘가에서는 누군가가 홀로 사라지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그들의 부재를 얼마나 빨리, 혹은 얼마나 늦게 알게 될까.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외로움은 함께하면 덜 수 있다. 우리 모두의 몫이다.이 외로움은 노년층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청년층의 고립 또한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대학을 졸업하고도 불안정한 고용 속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이들, 사회적 기대와 현실 사이에서 자신을 잃어가는 청년들 역시 점점 타인과의 연결을 피하게 된다. 겉으로는 바쁜 일상 속에 섞여 있는 듯 보여도, 마음을 나눌 대상이 없다는 점에서는 중장년 고립자들과 다를 바 없다.실제로, SNS 상에는 ‘관계가 무섭다’, ‘소통이 피곤하다’는 글들이 자주 보인다. 연결의 시대라지만, 역설적으로 관계는 더 얕고 고립은 더 깊어졌다. 수많은 팔로워와 채팅창 알림 속에서도, 마음속 공허함은 메워지지 않는다.이러한 현실에서, 외로움은 개인의 내면을 갉아먹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병리 현상으로 이어진다. 고립된 이들이 자살, 중독, 우울증 등으로 내몰리는 일은 더 이상 예외가 아니다. 외로움은 점점 ‘사회적 재난’이 되고 있다.결국 중요한 것은 ‘연결의 복원’이다. 인간은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필요한 존재라고 느낄 때 살아갈 힘을 얻는다. 복지 시스템과 제도 역시 필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우리가 스스로 이웃의 존재를 인식하는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공동체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같은 층에 사는 노인에게 인사를 건네는 일, 오랜만에 연락 온 친구에게 조금 더 마음을 내어주는 일, 한 문장이라도 진심을 담아 쓰는 메시지. 그런 순간들이 모일 때, 외로움은 서서히 물러난다.죽음을 막을 수는 없어도, 외로움은 나눌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우리가 시작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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