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의성을 시작으로 6일간 경북 동북부 5개 시군으로 번진 ‘괴물 산불’이 축구장 6만3천여 개 산림을 초토화시킨 후 진화됐다. 이번 산불은 27명의 사망자와 4000여 채 주택, 천년 고찰 고운사 등 수많은 문화유산에 피해를 발생, 역대 최악의 산불로 기록됐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비록 적은 양이지만 비가 내리고, 눈발이 날려 주불을 잡고 화기를 잠재우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만약 이 불길을 잡지 못했다면 화마는 울진과 봉화를 거쳐 백두대간 중심부로 번져갈 수 있었다. 이번 괴물 산불이 역대 최단 시간 내 최대 피해면적을 기록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기름을 머금은 듯 불에 잘 타는 소나무 위주의 산림 구성과 초속 4~27m의 강풍, 시간당 8.2km에 달하는 산불 확산 속도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산불의 진행 경로를 지도상으로 보면, 의성에서 시작해 안동, 청송, 영양을 거쳐 영덕 해안까지 도달, 마치 한반도 중부지역을 가로지르듯 수평선을 그은 듯하다. 이는 산불이 강풍을 타고 동쪽으로 빠르게 확산됐음을 알게 해준다.영덕에 도달한 산불은 해안가 마을을 불태우고, 항구에 정박한 배들까지 새까맣게 태울 정도로 강력했다. 불씨가 수백 미터까지 날아갔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례다.의성과 인접했지만 화마를 피해간 지역은 예천, 상주, 구미, 군위의 4개 지역이며, 피해 지역과 인접한 곳은 포항, 영천, 영주, 봉화, 울진 등 5개 지역이다.결국, 이번 괴물 산불로 5개 시군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고, 9개 지역이 산불 영향권에 들었다. 이는 경북 도내 22개 시군 중 절반이 넘는 14개 지역이 6일 동안 바람의 방향에 밤낮 가슴을 졸였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러한 산불이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2015~2024년 평균)는 연간 546여 건 산불이 발생하며, 경북 지역에서만도 매년 85.8건이 발생하고 있다. 이번 산불로 인한 피해 규모가 2조원에 이를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수백~수천억원(2024년 산불방지예산: 600여 억원, 산림헬기도입 운영예산: 1천여 억)의 비용으로 예방할 수 있었던 산불이 얼마나 막대한 피해로 이어졌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지난달 말 발생한 경남 산청과 하동, 진주 일대의 산불은 험준한 계곡과 절벽을 타고 지리산 주봉인 천왕봉 4.5km 지점까지 접근했으나, 미군의 초대형 헬기 지원으로 가까스로 진화에 성공했다. 이는 대형 산불진화장비의 필요성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와 관련해 최근 대구·경북에서는 산불진화용 헬기 2대가 추락해 조종사 2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두 조종사 모두 70대(73세·74세)였으며, 헬기 기종 또한 30년(30년·44년) 이상 된 노후 헬기였다. 이들 헬기들은 지자체가 민간에 임차, 산불 대응에 나섰던 헬기들이다. 이들은 산불 대응 예산 감액으로 열악한 여건 가운데 산불진화에 나섰다고 봐야 한다.
경북은 산림 면적이 도 전체의 70%를 차지하는 만큼, 산불 진화를 위한 초대형 헬기 추가 도입과 장비 보강, 젊은 층 중심의 산불진화요원 선발 및 체계적인 교육·훈련, 산불진화차량 진입이 가능한 임도 확장, 산불에 강한 수종을 활용한 식목 추진, 방화선 기능을 갖춘 산림 조성, 산불진화용 용수를 확보할 수 있는 저수지 확충 등 철저한 산불 예방 및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산불은 점차 기후 변화 등의 요인으로 발생 빈도가 늘어나고, 초동대응이 이뤄지지 않으면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질 수밖에 없다. 특별법 마련 등 국가적인 재난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정부와 국회가 조속히 협의, 대비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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