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 3월초 경북대학교 박물관을 방문해 박천수 관장을 친견(親見)했다. 경북대 박물관은 어느 국립박물관보다 훌륭하고 다양한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연구실에서 한시간 여 동안 함창고녕가야에 대한 필자의 의견을 진술하고 박천수 관장의 의견을 청취했다. 필자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자세히 기록 돼 있고 왕릉을 비롯한 다양한 유물유적이 전해오는데 무슨근거로 함창고녕가야를 부정하느냐고 따져 물었다. 가야사를 전공했으며 금년에 가야학회장으로 취임한 박 관장은 상당히 방어적인 자세를 취했다. 박 관장 본인은 고고학자이므로 고고학의 입장에서 말할뿐이며 그런의미에서 함창 등지에서는 고녕가야유물이라고 할만한 것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함창의 고녕가야입지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며, 고분발굴작업을 지속해 4세기 토기를 확인만 하면 공인한다고 목소리의 톤을 높였다. 박 관장은 상주시장에게 건의해 4세기 유물이 나올만한 곳을 골라서 지속적으로 발굴하자고 의견을 계속 개진하라고 주문했다. 필자는 기존에 초기 철기가 상당수 발굴됐으며 가야식 투구와 철갑옷에 대해서는 왜 부정하며 함창에서 출토된 토기의 절대연대를 확인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박 관장은 고녕가야시대인 초기 철기유물이 나왔지만 가야를 보장할 수 있는 4세기 토기가 발견돼야 한다고 했다. 또한 투구와 갑옷은 가야식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신라것이라고 단언했다. 고녕가야는 1세기 건국해 3세기에 망했다고 기록돼 있는데 하필 4세기 토기가 발견돼야 하는지? 그것도 절대연대를 측정할 수도 없는 토기만이 고녕가야를 증명할수 있다니 너무 자의적인 해석은 아닌지? 고로왕릉은 수세기동안 함창김씨문중에서 제사를 지내왔지만 무덤을 발굴하지 않은 상태에서 확증할 수 없다고 했다. 아마 함창김씨 문중에서 들었다면 뺨이 열짝이라도 감당하지 못할 발언인 것 같다. 토기는 탄소연대측정으로는 연대를 알수 없으나 형태의 비교분석을 통해서 몇 세기에 조성된 것인지 추정할 수 있다고 한다. 필자는 그렇다면 함창에서 출토된 토기 등을 5세기에 조성된 것이라고 추정할뿐 확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않느냐고 따졌다. 6가야 지역에서 출토되는 토기 대부분을 5세기 전후에 조성된 것이라고 확정한 것과 임나일본부와의 의도적인 연관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일 4세기 토기가 출토된다면 박 관장은 4세기 토기라고 발표할 수 있느냐고 물으면서 내가 보기에 절대 그러지 못할거라고 덧붙였다. 그렇게 발표하는 순간 일제 강점기로부터 내려오던 강단사학의 논리전반이 균열을 가져올 것이므로 박 관장은 손사레를 치며 유네스코 문화유산등재에 우리지역의 가야고분을 하나라도 더 등재하면 좋은일인데 왜 거부하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필자는 남산고성이 가야시대의 성이라고 문헌에 나오고 고분자체가 가야식 고분이고 시조왕릉이 있는데 어째서 그 모든 것을 부정하냐고? 그 기준으로 본다면 대구를 일본서기 출처의 탁국이라하고 합천을 다라라 하고 남원을 기문이라 주장하는데 타당성이 있습니까? 거기는 고고학적 유물이 나왔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고고학 유물이 나왔다면 유물에서 일본의 탁국, 다라, 기문과 관계되는 무슨 증거라도 나왔습니까? 일본서기에 다라가 나오는 것처럼 합천에 다라리가 있으며 기문이라는 글귀는 일본서기 외에 중국양나라 양직공도에도 등장한다고 한다. 일본서기의 다라와 기문이 한국의 합천 남원과 역사적으로 무슨 연관이 있어 합천을 다라라하고 남원을 기문이라고 확정합니까?  박 관장 본인은 오직 고고학으로 말할 뿐 문헌은 문헌학자에게 문의하는 것이 옳다고 한다. 함창고녕가야는 삼국사기 저술을 전후해 1천여 년간의 지명변천을 자세히 얘기하고 있으며 지금도 그때 지명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토기, 철기, 왕릉 등 유물이 모두 있는데도 그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런 기록 근거를 확정할 수 없는 다라, 기문, 탁순 등 일본서기 지명을 우리 지도에 확정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식민사학의 전형이라 아니할 수 없다.한국고대사학에서는 중국삼국지 위지동이전에 나오는 변진구야국을 김해라고 비정한다. 위지동이전 어디를 훑어봐도 변진구야국이 김해라는 구절이나 단서는 단 하나도 없다. 단지 ‘구야’가 우리발음으로 가야와 비슷하며 가야를 대표하는 지역이 김해이므로 김해로 비정한다는 논리다. 이것이야말로 말 그대로 비정이지 변진구야가 김해일 확률은 0.1%도 되지 않는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가야의 기록이 너무 적으므로 얼기설기 기존의 기록을 갖다 맞춘다는 식으로 위지동이전도 빌리고 일본서기도 인용한다고 한다. 정작 구체적으로 고녕가야에 대한 기록이 있는 우리의 사서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은 배제하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역사의 진실을 위해서나 애국의 차원에서라도 결코 그럴수 없으며 그렇게 내버려 두지도 않을 것이다. 이들이 식민사학을 극복했다고 하면서 식민사학의 원본을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는 현실에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대들이 무슨연유로 우리 역사를 그렇게 도외시하는지 알 만하지만 결코 용납할수 없는 일임을 준엄히 경고하는 바이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 제보하기
[메일] jebo@ksmnews.co.kr
[카카오톡] 경상매일신문 채널 검색, 채널 추가
유튜브에서 경상매일방송 채널을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