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안동 ic를 빠져나와 10여 분 달리면 의성군 단촌면소재지가 나온다. 필자가 여기서부터 네비게이션을 보면서 병방동 고분군까지 천천히 주위를 살피면서 가다보면 자유농장을 지나 야산아래 도착한다. 병방리고분군은 낙동강 지류인 미천강 하류에서 3~4km 떨어진 곳에 조성돼 있다. 미천(眉川)은 의성군 옥산면 황학산에서 발원해 단촌면을지나 안동시의 남후면을 지나 낙동강본류와 합쳐지는 59km길이의 지방하천이다. 낙동강에는 왼쪽에서 흘러드는 지류와 오른쪽에서 흘러드는 지류가 있다. 미천강은 오른쪽에서 흘러드는 지류로서 6가야로 알려져 있는 낙동강 왼쪽지류와는 반대방향에서 형성된 하천이다. 야산을 따라 10분쯤 걸어가면 산능선에 크고 작은 무덤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낙동강 다른 지역의 고분과는 달리 봉분이 높지않고 펑퍼짐한 것이 특징인데 고분사이로 근래에 새로 조성한 무덤들도 간간히 보인다. 어림잡아 50여 개의 고분이 산능선을 따라 죽 이어져 있다. 능선옆으로 마을이 내려다보이므로 예전부터 동네와 함께 공존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굴된 고분안으로 몸을 비집고 들어가보니 내부가 대체로 낮으며 돌방내부규모가 다른지역 고분보다 적다. 토질이 일반흙이 아니고 판석이 풍화된 토질이라 삽이나 괭이로 파기가 어려운 자갈섞인 흙이다. 삽은커녕 괭이로 쪼아도 괭이날이 땅속으로 잘 들어가지 않을 만큼 토질이 돌에 가깝다. 무덤내부 아래부분은 1.6m정도의 넓이인 반면 상판덮개돌은 70cm정도로 좁다. 상주병풍산이나 예천봉덕산고분들은 무덤의 아래면과 윗면의 폭차이가 적은반면 병방리고분은 아래부분은 펑퍼짐하지만 상부는 매우좁다. 그렇지만 봉분자체는 오랜세월이 흘렀지만 파괴범위가 적고 온전히 무덤형태를 갖춘 것이 많다. 필자는 병방리답사를 빨리 마치고 미천강을 건너 맞은편 후평리고분군답사에 올랐다. 후평리고분군은 국도 바로옆으로 야산을 따라 올라가면서 조성돼 있다. 도로에서 멀리 보이는 불룩한 고분을 가까이 다가가 보니 이미 도굴돼 구멍이 뻥 뚫려있다.
등산로를 따라 5분쯤 더 올라가니 고분이 계속 이어진다. 넉넉잡아 60여 개가 줄지어 서 있는데 한결같이 펑퍼짐한 형태로써 도굴된 것인지 아닌지 모호하며 대부분 무덤의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다. 2차선 바로 옆의 산길을 따라 조성된 무덤인데도 훼손상태가 양호하고 봉분형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의외다. 특이점이라면 무덤을 조성할 때 토질상 작업이 어려웠겠지만 도굴작업도 다른무덤 보다는 두배이상 애를 먹었을 것이다. 또한 상주 예천 등의 고분과는 낙동강을 사이에두고 근본적으로 동서쪽방향으로 지류를 달리하고 있다. 으례히 가야라고 하면 낙동강 서안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상식이지만 의성의 고분은 동안에 위치하고 있다. 낙동강이라는 강명(江名)자체가 가락의 동쪽으로 흐르는 강이라는 의미가 있으며 6가야 모두 낙동강 서안에 위치하고 있다. 예외라면 6가야에 속하지는 않지만 비화가야로 알려져있는 창녕고분군은 도시의 방향따라 낙동강 동안에 위치하고 있다. 낙동강 상류에 있는 의성 역시 낙동강 동안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이고장에 조성된 고분역시 도시따라 낙동강동안의 지류에 조성돼 있다. 특히 같은 낙동강 세력이지만 입지상 낙동강 동쪽세력이 서쪽세력보다 먼저 신라에 병합됐을 것이다. 후평동과 병방리 가운데 지점에 높은 봉우리가 있는데 정상에는 이색적인 석성이 조성돼 있다. 테뫼식 석성으로 둘레가 백미터도 안되는 적은 규모로써 병영터라기보다는 천제터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특히 보통 5가야 6가야는 낙동강 지류에 있으며 토성과 고분 그리고 성혈석이 있는 것이 공통점이다. 의성의 고분군도 낙동강의 지류에 위치해 있으면서 고분이 있고 성혈석이 있으며 성이있다.
필자는 단지 낙동강 동쪽에 있으며 토성이 아니고 석성으로써 규모가 아주 작으며 입지상 의례용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낙동강 지류인 미천강에 조성된 병방리고분군, 후평리 고분군과 고녕가야의 관계를 연관지어 보지않을 수 없다. 신라가 팽창해 낙동강유역까지 세력을 확장하기 전까지 이 지역에 형성됐을 세력의 정체를 확인하는 숙제가 우리에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