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세월의 화두는 정치든 행정든 사회든 어느 부분이든 온통 복지문제(福祉問題)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행정이나 정치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복지 없이는 무슨 이야기이든 무슨 일이든 풀지 못하는 시대다. 복지중에서도 초고령사회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노인(실버)복지다. 그렇다보니 이제는 국가가 노인을 간병하고 수발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개인이 수발함으로서 노인들의 괴로움, 형제들 간의 반목, 가족의 해체 등 전 가족이 수많은 고통을 분담하며 감내해 왔다. 포항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필자(가명)씨는 지난 5년을 전쟁처럼 살았다. 시어머니가 (89세로작고) 치매와 간 질환으로 누운뒤, 친정어머니(82)마저 치매로 수시로 길을 잃고 헤매기 시작했다. 병 수발로 파김치가 된 김씨는 건강보험공단이 운영하는 노인 장기요양보험에서 해결책을 찾았다. 한 달 이용료(1인당 월 129만~151만원)의 20%만 부담하면 복지사ㆍ간호사ㆍ요양보호사ㆍ조리사ㆍ물리치료사가 상주하는 노인전문요양시설에 두 어머니를 모실 수 있었다. 부모를 시설에 모낸다는 죄책감이 있었지만 김씨 자신도 60대에 접어들어 더 이상의 수발은 한계였다. 김씨는 “시어머니가 욕창한번 없이 돌아가셨다. 내가 직접 모실 때보다 두분이 훨씬 편안하게 지내다 돌아가셨다”고 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이 도입 된지 3년이 지났다. 현제 노인 20명 중 1명(4.9%)이 이 제도의 혜택을 보고 있는 셈이다. 이 제도 도입 전까지는 노인 병 수발은 전적으로 자식의 몫이었다. 노인을 간병하느라 자식까지 생업을 잃거나 골병이 드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김정숙 포항노인일자리창출센타장(사회복지사1급)은 “노인장기요양보험은 한국인의 삶의 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제도”라고 말했다. 노인이 늘고 노령기가 길어진 반면 자식세대의 생활은 분주해졌다. 이에 따라 노인을 돌볼 책임이 개인의 어깨에서 국가의 어깨로 무게 중심이 옮겨갔다. 노인 입장에서도 자식이 효자건 불효자건, 병들었을 때 최소한의 인간적인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는 장치가 생긴 셈이다. 김씨는 시어머니를 모시면서 터득한 노하우를 살려 2008년 9월부터 포항지역의 모 불교종단시설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노인들을 돌보고 있다. 지난 11월 간암으로 별세한 A할아버지(당시87세)는 김씨를 친자식처럼 생각했다. 김씨는 할아버지를 친딸같이 모셨다. 1주일에 한번씩 이발 및 목욕봉사는 물론이고 안마를 해주며 불편함이 없도록 챙겨주고 말벗이 되어주곤 했다. A할아버지의 딸은 장례를 치른 뒤 김씨에게 “자식도 못하는 일을 해주셨다”며 고개를 숙여 감사했다. 강순자(가명.82) 할머니는 포항연일의 장남 집에 살다 사업이 망해 2년 전 요양원으로 들어왔다. 시설 이용료ㆍ간식비ㆍ약값ㆍ기저귀값 등 월30~40만원은 어렵게 사는 차남과 딸들이 조금씩 모아서 냈다. 할머니가 요양원에 처음 들어올 때 할머니의 자식들은 서로간에 할머니 수발에 있어 감정의 골이 깊었다. “평생 안 보며 살겠다”고 장담했다. 장남은 “관절염ㆍ허리디스크ㆍ고혈압ㆍ치매가 겹친 어머니를 지금껏 모셨는데 동생들이 몰라준다.”고 섭섭해 했고, 형제들은 “부모 재산을 독차지한 형님이 이제와서 시설비용을 대라며 책임을 미룰 수 있느냐”고 항의했다. 그러나 강 할머니가 요양원 생활에 순탄하게 적응하면서 자식들은 감정이 누그러졌다. 위덕대학 모복지담당교수는 보건복지부 의뢰를 받아 노인장기요양보험 혜택을 받는 노인 2만2725명을 조사한 결과, 노인들은 요양 서비스를 받은 뒤 노인들의 외로움과 피해의식 불안감 등 의사소통 장애가 현격히 줄어들고 있을 뿐 아니라 특히 가족들의 만족도가 높아지고 있어 요양시설의 중요성이 크게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선린대에서 복지학을 강의하는 이모강사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을 이용하는 노인의 보호자 1000명에게 설문한 결과, 10명중 8명(75.9%)이 “가족관계가 좋아졌다”고 답했다. 한여울요양원의 정사무장은 “여기 계신 노인들은 가족들이 어떻게든 잘 모시려 하다가 자기 몸이 부서질 지경이 돼서 요양원을 택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전하고 이 과정에서 가족 갈등도 적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정사무장은 “요양원에 모신 뒤 노인의 건강이 호전되면 자식들 관계도 따라서 호전된다.”고 설명하고 김 원장 자신도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아버지(별세. 당시87세), 뇌졸중으로 쓰러진 시모님(별세. 당시73세)을 간병할 때 형제간의 갈등을 직접 경험했다고 전한다. 포항에서 불교종단의 시설을 운영하는 법은스님은 요양원제도에 대해 “우리나라 역시 국가가 노인 봉양의 1차적 책임을 지고 자식이 국가의 역할을 보완하는 체제로 옮아가는 유용한 제도”라고 설명하고 “시설 입소 후 가족관계도 좋아져 장기요양보험제도가 노인들의 삶의 질을 높여 사회를 안정화 시키는데 크게 일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금의 재정적 어려움만 극복된다면 앞으로 요양원제도가 우리사회의 효자노릇을 톡톡히 수행 할 것으로 기대가 크다. 배동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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