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보상운동은 일제 침략정책의 일환으로서 대한제국 정부에 강요된 거액의 국채 1천 3백만원을 한국민이 단연(斷煙)하고 그 성금을 상환해서 침탈당한 국권을 회복하려고 전개한 범국민적 민족운동이었다.
국채보상운동은 약 105년전인 1907년 1월 29일 대구에서부터 발단하기 시작해서 전국에 요원의 불길같이 확산 전개된 전 민족적 애국계몽운동의 하나였으며, 국권회복을 위해서 한민족의 국력양성운동에 크기 기여한 운동이었다. 양반이나 부유층은 물론 노동자, 농민, 상인, 군인, 학생, 기생, 승려 등 참여하지 않은 계층이 없었다.
특히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는데 이들은 반찬값을 절약하거나 비녀, 가락지, 은장도 등을 의연품으로 내놓으며 상상을 초월한 전폭적인 지지를 하였다.
105년 전 일어났던 이 역사의 한 장면을 떠올리면 우리 선조들의 애국 충정에 가슴이 뜨거워진다. 이렇게 대구에서 시작하여 서울로, 그리고 전국적으로 전개되어 전 국민이 참여한 나라 빚 갚기 운동이었던 국채보상운동은 의병전쟁과 함께 한말 국권회복운동의 중심이었으며, 일본의 경제 식민지화에 저항하여 단합된 힘으로 함께 일어섰던 우리 한국민의 저력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현재 대구에는 국채보상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이있다. 공원 내에는 당시 상황과 사진 자료 등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과 국채보상운동에 참가한 대구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의 거룩한 뜻과 이 운동에 참여한 전국 여성들의 구국정신을 선양하기 위해 쌍가락지를 형상화 했다는 국채보상운동여성기념비가 건립돼 있다.
또한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국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근검절약, 국산품의 애용, 저축운동 등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김광제, 서상돈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김광제ㆍ서상돈선생 흉상’이 건립되어 세워져 있다.
또한 대구시민회관 내에는 ‘국채보상운동기념비’가 남녀노소 온 백성들이 엽전을 모으는 모습으로 형상화 되어 국채보상운동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지금처럼 우리 대한민국은 한반도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안보위기 상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때에 국민 모두가 국가를 위해 희생ㆍ헌신할 수 있는 마음을 갖도록 하는 선제 보훈정신을 통해 예전 우리 선조들이 그러했듯이 온 국민이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이번 주말 바쁜 일상이지만 시간을 내어 이러한 시설들을 찾아본다면 우리의 선조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나라 빚 청산으로 자주ㆍ독립국가를 수호하고자 했던, 또한 민족이 하나 되는 구심점을 만들어 주었던 국채보상운동의 정신을 되새겨 보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한다.
박혜경 대구지방보훈청 보상과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