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TK 민심은 여전했다. 박정희 탄신 107돌 기념행사에 유족 대표로 단상에 올라선 박 전 대통령에게 참석한 시민들은 환호와 박수갈채로 1년 3개월만에 구미를 찾은 그를 위로·격려했다. QNR박 대통령은 “아버지는 늘 나라를 위한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생각에 잠기신 모습이었다.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나 작은 체구로 어찌 그런 인생을 사셨는지 제가 나이가 드니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과 애잔함이 더 커진다”고 회상했다.참석자 모두가 순간 숙연해 졌고, 36년간의 일제의 수탈과 3년간의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 땅을 선진국 대열에 올려놓기 위해 불철주야 힘써온 박정희 대통령의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 폐허되고 두동간 난 한반도 남쪽 땅,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대한민국에 새로운 조국 건설을 천명한 박정희 대통령은 베트남 파병에 대한 감사 표시로 미국 정부가 보내온 1000만달러로 한국과학기술연구소(현 KIST)을 건설했고, 최형섭 초대 소장을 미국으로 보내 젊은 과학자 유치에 힘썼다. 이때 귀국한 과학자가 18명이다. 이들은 미국서 받던 연봉의 절반도 안 되는 월급과 열악한 생활환경 가운데서도 자신들을 매달 1~2번씩 찾아 격려해 준 대통령과 조국을 위해 연구 개발에 매진했다. 이들에게 박정희 대통령이 한 당부는 ‘절대로 인사청탁을 받아들이지 말라’라고 한다. 이후 KIST를 통해 생겨난 연구 조직이 한국과학기술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등 20개가 넘는 연구소와 대학이 설립됐다. 일제강점기 가난한 농사꾼의 집안에서 왜소한 체격을 가진 어린 학생이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일평생을 헌신한 결과, 현재 대한민국은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 세계 6위의 국방력을 가진 자유민주국가로 성장했다. 종북좌파 세력들은 박정희 대통령 재임 중은 물론 서거 이후에도 그의 치적 지우기에 몰두했고 뒤이은 우파 대통령들의 직무 수행에 방해를 주려 대형 사고와 죽음 등을 통해 국민 선동질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 등 환경적 요인은 물론 나라간의 갈등과 전쟁 등 불확실성 및 혼란, 북한의 위협 속 중국·러시아·일본 등 강대국에 포위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박정희 대통령의 지혜와 용기, 예지력 등이 더욱 아쉬운 때다. 박정희 대통령을 흠모하는 이들이 △영남대학교 교정에 동상 건립 △12월 5일 경북도청 앞 동상 제막식 추진 △대구 동대구역 박정희 광장에 동상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일부 그를 비판하는 이들도 없지 않으나, 위대한 인물 누구에게도 공과가 있는 법이다. 조국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룩한 영웅 박정희의 공로를 기려, 동상 건립을 통해 후대에 교훈 삼으려 함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로서 마땅한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