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된 지 약 4개월이 흘렀지만 대다수 중소기업들이 법적 의무를 지키기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지난 22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5인 이상 50인 미만 업체 466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 기업 중 77%가 “법적 의무 준수를 완료하지 못했다”고 했다. 중대재해법의 골자는 안전·보건 의무를 위반해 근로자 등에게 중대재해 사고가 발생하면 사업주 등에게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것이다. 사업주들은 별도의 전문 인력을 채용할 여력이 없는 데다 의무 사항이 불명확하고 광범위해 법을 지키기 어렵다는 것이다. 고금리·고물가 상황에서 하루 하루를 버티는 중소 사업주들에겐 사실상 ‘교도소 담장 위’를 걷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더불어민주당이 영세기업들의 어려운 현실을 외면한 채 50인 미만 사업장의 중대재해법 유예 법안을 처리하지 않고 슬그머니 눈을 감았다. 문제는 실효성이 낮고 산업 현장의 불안만 조장하는 법이 지난 1월 27일부터 전면 시행되고 있는 점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중소기업·소상공인 등이 청구한 중대재해법에 대한 헌법 소원을 전원재판부에 회부하기로 결정했다. 중대재해법의 의무와 처벌 규정의 합헌 여부를 적극적으로 심리하겠다는 취지다. 상당한 시일이 걸리는 헌재의 결정이 나오기까지 중대재해법을 다시 유예해야 하는 것이 맞다. 이번 조사에서도 응답 기업의 86%가 해당 법을 유예하라고 호소했다.중대재해법은 어떤 명분으로 포장하더라도 지킬 수 없는 법이다. 그런데도 무작정 밀어붙인다면 더 큰 부작용을 가져오게 된다. 산업 현장의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자는 입법 취지는 좋지만 현행 법안을 계속 강행한다면 ‘범법자 사장’만 양산하는 이상한 법이 되고 말 것이다. 22대 국회는 개원 직후 산업 현장의 혼란과 불안을 외면하지 말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법 개정을 추진해야 한다. 과도한 처벌 규정을 손질하고 소규모 기업에 대한 의무 사항을 현실에 맞게 축소 조정해야 한다. 또 정부는 산업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처벌보다는 예방에 초점을 맞춘 안전 정책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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