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도 대학 입시에서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기로 했다. 한 번에 2000명 증원이 다소 파격적이긴 하지만, 국내 의료 여건에 비춰볼 때 미래 의사 수 확대는 불가피하다. 내년부터 늘려도 국민이 그 효과를 체감하려면 10년후를 기다려야 한다. 그만큼 의대 정원 현실화가 많이 늦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필수의료와 지방의료는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같은 말이 나올 정도로 붕괴 직전에 있다. 지난해 서울 빅5 병원의 전공의 모집 때 국민 생명과 직결되는 ‘외산소’(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에서 대거 정원 미달 사태가 벌어졌을 정도다. 지방은 더 이상 말할 것도 없다. 억대 연봉을 내걸고도 의사를 못 구하는 지방병원이 수두룩하다. 필수의료 공백으로 제때 치료를 못 받아 사망한 환자가 2021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강원 49.6명, 경남 47.3명 등으로 서울(38.6명)보다 훨씬 많다. 의대 증원 없이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한국은 다른 선진국 대비 의사가 절대 부족하다. 인구 1000명당 임상의사는 2021년 기준 2.6명(한의사 포함)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멕시코(2.5명)를 빼면 가장 적다. OECD 평균 3.7명에는 한참 못 미친다. 의대 졸업자는 인구 10만 명당 7.3명으로 이스라엘(6.8명), 일본(7.2명)에 이어 세 번째로 적다. 급속한 고령화로 의료 수요는 늘어날 게 뻔하다.상황이 이런데도 대한의사협회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해 총파업을 예고한 건 국민 눈 높이에 맞지 않다. 의사단체들은 ‘지금도 의사가 충분하다’거나 ‘인구 감소로 의료 수요가 줄어들 것’이란 논리를 펴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과잉진료를 부추길 것’이란 의사들의 주장은 자신들의 밥그릇 타령으로 비쳐진다. 환자를 볼모로 한 의사 파업은 명분이 없을 뿐 아니라 ‘밥그릇 지키기’로 비칠 뿐이다. “의료계와 소통 없는 일방적 강행”이라는 의협의 기자회견도 어이없다. 의대 증원 논의가 이번에 처음 나온 얘기던가. 의대 정원 확대한다고 의사들이 파업하는 나라가 한국말고 또 있겠나.의대 증원은 대다수 국민이 동의하는 사안이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지난해 12월 실시한 국민 여론조사에서 89.3%가 의대 증원에 찬성했다. 11월 조사에선 82.7%였는데 더 높아졌다. 물론 의대 증원만 하면 곧장 필수·지방의료 공백이 해결되는 건 아니다. 의대 정원을 늘려도 지금 상태로는 의사들이 돈 되는 ‘피안성’(피부과·안과·성형외과)이나 편안한 ‘정재영’(정신과·재활의학과·영상의학과)으로 몰릴 것이란 의사단체의 항변도 일리가 있다. 의사들도 ‘파업 불사’만 외칠 게 아니라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정부와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의대 증원이 의대 쏠림을 더 부추겨 이공계를 초토화할 것이란 우려가 커진 만큼 이에 대한 대책 마련도 정부의 과제다. 야당도 반대를 위한 반대는 하지 말기 바란다. 의대 증원은 여야를 떠나 국가적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