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위기에 빠진 여당 구원투수로 나서 관심과 주목을 끌고 있다. 국민의힘은 지난 21일 내년 총선 정국을 이끌 당 비상대책위원장에 한동훈 장관을 지명했다. 한 장관은 이 제안을 수락하고 윤석열 대통령에게 사의(辭意)를 표명했다. 한동훈 비대위는 오는 26일 전국위원회 의결 등을 거쳐 연내 공식 출범할 예정이다.지난 13일 김기현 전 대표가 사퇴한 지 8일 만이다.
윤석열 정부의 초대 법무부 수장으로서 한 전 장관은 지난 1년 반 동안 여권 내 注目을 한 몸에 받은 ‘스타 장관’이었다. 21년 강골 검사의 꼿꼿한 이미지에 순발력(瞬發力) 있는 언술 등이 ‘스마트 보수’의 새 간판으로 주목될 만했다. 최근 차기 대통령 선호도 조사에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거의 턱밑까지 쫓아갔다. 오랜 지지율 침체와 당 지휘 체계의 혼돈(混沌)이 겹친 여당을 추슬러 총선을 준비하는 데 그가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가 쏠렸다. 여당의 원로들도 “남은 배 12척을 맡겨 보자”며 비대위원장 추대(推戴)를 지지했다. 그만큼 상황이 절박(切迫)하고 그에게 거는 기대가 매우 크다는 뜻이다.
이제 기대의 공은 한 전 장관에게 넘어갔다. 일개 부처의 장관이 아니라 총선이 초읽기에 들어간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에서 집권당의 당 대표 역할을 해내야 한다. 새롭게 출범할 비대위는 당 안팎에서 요구되는 革新을 확인시켜야 하는 난제(難題)들이 눈앞에 산적해 있다. 흩어진 보수지지층을 결집하면서도 20·30 청년층과 중도층을 두루 확장하는 두 마리 토끼도 잡아야 한다.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하던 한 장관은 기자들에게 “세상의 모든 길은 처음엔 길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이 같이 가면 길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중국의 문호 루쉰의 저서 ‘고향’의 한 구절을 인용해 일각에서 “정치 경험이 없다”는 비판에 반박한 말이다. 그는 또 부연해서 “진짜 위기는 경험이 부족해서라기보다 과도하게 계산하고 몸 사릴 때 오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한 장관의 이 말은 임명권자의 눈에 맞추기 위해 갖가지 방법으로 입맛에 맞는 달콤한 말 만하면서 몸을 도사려 온 ‘친박’ ‘친윤’ 등 과거 많은 정치적 인물들을 보아오지 않았는가. 지금도 여의도 주변에는 때가되면 공천을 받기 위해 갖가지 꼬리를 치며 철새처럼 행동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이 설처대고 있는가.
지난 주말 국민의힘 초선 의원들로부터 한 장관에 대한 비대위원장 추대설이 나왔을 때 세간에선 민주당 측에서 한 장관을 ‘윤 대통령 아바타’라고 한 말을 공유하면서 한 장관이 과연 윤 대통령에게 소신 있는 주장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보였다. 지금까지 국민의힘과 용산쪽의 관계는 수평적 당정 관계가 아닌 수직적 당정 관계가 계속돼 온 만큼 과연 한 장관이 수평적 관계로 풀어낼 수 있을까 하는 우려다. 특히 총선 입후보자 공천을 둘러싼 인선 작업에서 외부의 압력에 칼날같은 잣대를 들이댈 배짱이 있느냐는 것이다. 한 장관은 이런 의문에 “저는 지금까지 공직생활을 하면서 공공선(公共善)을 추구한다는 한 가지 기준을 생각하면서 살아왔다”며 “그 과정에서 누구에게도 맹종(盲從)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했다.비대위원장은 공천관리위원장 선임 권한과 공천 최종 결재권을 가졌다. 정치 신인의 참신한 시각으로 신선한 인물 발탁(拔擢)에 혼신의 힘을 쏟아야만 등 돌린 중도층을 설득해 영남당 이미지의 한계를 벗을 수 있다. 또한 총선 공천 말고도 이준석 신당 등 당장 당 안팎으로 풀어야 할 현안도 한두가지가 아니다.
전도유망(前途有望)한 정치 신인이었으나 이제부터 한 전 장관은 가차 없이 냉혹(冷酷)한 성적표를 받아야 하는 자리에 섰다. 윤 대통령 집권 1년 7개월 동안 여당의 비대위 체제는 이번이 세 번째다. 한동훈 전 장관은 이런 상황을 정상으로 볼 수가 없는 국민의 답답한 심정을 헤아린다면 뼈를 깎는 革新과 刷新 의지를 반드시 證明해 보여야만 한다. 이제 비대위의 성패가 내년 총선의 명운(命運)을 가른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말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