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정권 붕괴의 도화선이 된 부마민주항쟁을 촉발한 대학생들의 시위가 부산보다 앞서 경남 마산에서 준비됐다는 새로운 증언이 나왔다.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회장 정성기)와 ㈔부산민주화기념사업회(이사장 김재규)는 부마민주항쟁 32주년만에 처음 발간한 `부마민주항쟁-마산편:마산, 다시 한국의 역사를 바꾸다`라는 제목의 증언집에 이 같은 내용이 담겼다고 1일 밝혔다.
이 증언집에서 김용백 당시 마산상남성당 주임 신부는 "10ㆍ18항쟁이 일어나기 전에 경남대 학생인 최갑순과 옥정애가 데모를 준비하고 있었고 나한테 도움을 청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그때만 해도 유인물을 만들려면 등사기로 밀어야 하는데 성당에는 그게 있었는데다 혹시 도망갈 일이 생기면 제일 숨기 좋은 곳이 성당이었다. 내가 숨겨주겠다고 했다"고 증언했다.
이어 "(부산 시위에 앞서) 첫번째 거사일이 9월말이었는데 사람들이 모이지 않아 실패로 돌아갔고, 두번째 거사일이 10월22일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며 "그런데 18일에 (부산에서) 데모가 먼저 일어났다"고 덧붙였다.
또 이 증언집에는 부마민주항쟁을 보도하지 못하게 한 언론탄압과 언론조작에 대한 증언도 실려 있다.
신용수 당시 마산문화방송 기자는 "마산의 10ㆍ18항쟁은 대학생들이 먼저 시작했지만 수출자유지역 근로자들, 어시장 상인들 등 저층 구조에 있던 사람들이 합류했다"며 "응어리진 것들이 있었고, 데모가 일종의 분출구가 됐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보도는 전면 통제됐고, 상부에서 연락이 내려왔다"면서 "시간대별로 상세히 일지를 기록했지만 10월20일까지 보도를 못했고, 21일부터 데모대에 의해 시위가 산발적으로 벌어졌다는 식으로 가볍게 보도했다"고 증언했다. 이밖에 이 증언집에는 사망자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진 부마민주항쟁때 경찰에 의한 사망자가 있었다는 유족의 증언도 담겨 있다.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