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동틀 때 쯤 드넓은 바다 끝 어딘지도 모를 곳에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이 보이고 태양은 옅은 주황빛을 일렁이며 떠오른다. 주변을 둘러봐도 지나가는 상선 한척 뿐, 긴 비행에 지쳐 쉬어가는 새 한 마리도 없이 해양경찰 경비함정은 프로펠러가 만드는 하얀 포말 항적을 그리며 바다를 가로지르고 있다. 평온할 것 만 같은 망망대해에는 각 나라마다 자기네 바다라 주장하는 수많은 경계선(線)들이 존재한다. 한 나라의 주권이 미치는 한계선인 영해선, 관세·재정·위생 그리고 출입국에 관해 한정적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접속수역선, 해양자원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배타적경제수역선 등 철조망이나 울타리 하나 없는 바다 위 경계선을 지키기 위해 오늘날 각 국의 경쟁은 매우 치열하다. 해양경찰은 1953년 12월 23일 부산에서 658명의 인력과 해군으로부터 인수받은 181톤 함정 6척으로 첫 발을 내딛었다. 당시 6.25전쟁 직후 이승만 전 대통령은 일본어선의 무분별한 불법조업을 방지하고 우리나라 수산자원을 보호하기 위해 해안선으로부터 평균 60마일로 설정된 평화선을 선포했고 이를 실효적으로 지키기 위해 창설된 해양경찰대가 현재 해양경찰의 시초이다. 이후 1960년대 들어 북한의 해상침투가 빈번해지고, 밀수·밀항이 사회문제로 불거지자 1962년 「해양경찰대설치법」 제정하여 해양경찰에 어업자원 보호 임무뿐만 아니라 간첩의 해상침투 방지, 밀수·밀항자 단속을 위한 해상사법권을 부여하게 되었다. 국제적인 추세에 따라 정부는 1977년에「영해법」을 제정하고 우리나라 영해를 12해리로 선포했다. 그 전까지는 한·일어업협정에 따라 정해진 전관수역을 침범하는 외국어선만 경계 감시해 왔으나, 이때부터 영해 침범 어선과 신고하지 않은 타국 선박의 통항 등을 감시하는 임무도 해양경찰이 맡게 되었다. 1996년에는 ‘바다의 헌장’이라 불리는 UN해양법 협약이 우리나라에 정식 발효되었다. 이 협약의 중요한 의의는 각 국이 영해기선으로부터 ‘200해리의 배타적경제수역’을 설정할 수 있게 된 것인데, 말하자면 200해리 범위 내에서 연안국은 어업자원, 해저 광물자원, 에너지 생산권, 해양과학조사권한 등에 대해 경제적 주권을 행사할 있다는데 있다. 사실상 ‘신 해양주권시대’가 도래한 셈이다. 이처럼 바다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지켜야 할 관할해역이 넓어지는 만큼 해양경찰의 임무와 역할은 커져왔다. 특히 외국어선 불법조업, 독도 영유권, 이어도 해양과학기지 등 인접 국가 간 바다에서의 영토 분쟁과 마찰 속에서 해양경찰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지금도 한·중·일 간 아직 획정되지 않은 배타적 경제수역을 차지하기 위한 보이지 않는 경쟁은 뜨겁다. 해양경찰이 조국의 바다를 수호하기 위해 지금껏 걸어온 시간이 올해로 70년이 되었다. 앞으로 새로운 해양질서와 규범이 생겨나 국가 간 어떤 형상의 마찰이 빚어질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해양경찰이 지켜야 할 바다가 있는 한 보이지 않는 바다의 경계선(線)을 철통같이 지키기 위해 해양경찰가(歌)의 한 구절처럼 우리는 밤낮없이 달려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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