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공천심사위원회가 ‘4ㆍ24 재ㆍ보선’에서 기초자치단체장과 기초의원 후보를 공천하지 않기로 했다. 새누리당 공천심사위원장인 서병수 사무총장은 어제(19일) “대선 때 국민에게 한 약속을 지킨다는 의미에서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후보를 공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서 총장은 민주통합당에도 무(無)공천을 제안하고 공직선거법 개정을 촉구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4월 24일 재ㆍ보선이 실시되는 기초단체장 지역은 경기 가평군과 경남 함양군 등 두 곳, 기초의원은 서울 서대문 마, 경기 고양시 마, 경남 양산시 다 등 세 곳이다. 우리는 새누리당 공천심사위원회의 무공천 방침을 대선공약을 실천하고 국회의원의 기득권을 내려 놓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이해하면서 적극 환영한다. 당내 반발 기류가 남아 있지만 조만간 최고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무공천 방침을 최종 확정할 것으로 기대한다.
기초단체장 정당공천제는 1995년 지방선거 때부터, 기초의원 정당공천제는 2006년 지방선거 때부터 도입됐다.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정당공천제는 정당의 책임정치 구현, 공직 후보자에 대한 사전검증 등을 이유로 실시됐다. 정당공천제는 순기능도 있지만 역기능이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중앙당과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해당 지역 기초단체장 및 기초의원 후보자에 대한 공천권을 사실상 행사함으로써 지방자치제도의 도입 취지를 훼손하고 공천과정에서 부정부패를 잉태했다. 공천을 따내려는 후보자들이 중앙당이나 지역구 의원들을 상대로 뇌물을 건네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들은 당선된 뒤에도 자유롭지 못한 실정이다. 다음 선거에서 다시 공천을 받기 위해선 공천권을 쥔 지역구 의원의 ‘선거운동원’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당공천제가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이라는 지방자치제도의 근간을 위협하고 정치불신을 가중시키는 ‘독’이 된 것이다.
이런 역기능 때문에 정치권 일각과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기초단체장 및 기초의원 정당공천 폐지론이 줄기차게 제기돼 왔다. 박근혜 대통령도 18대 대선 과정에서 “지방이 중앙정치에 예속되는 폐해를 줄이겠다”면서 기초단체장 및 기초의원 후보자의 정당공천 폐지 등을 담은 정치쇄신안을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다. 민주당 문재인 후보도 기초단체장까지는 아니지만 기초의원 공천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유정복 행정안전부 장관도 얼마 전 내년 6월에 치러지는 지방선거 이전까지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정당공천제를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야는 조속히 정치개혁특위를 가동해 기초단체장 및 기초의원 선거에서 정당공천제를 폐지하기 위한 논의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정당공천제를 폐지하기 위해서는 공직자 선거법 개정이 선행돼야 한다. 지난해 9월 새누리당 정몽준ㆍ이재오 의원이 기초단체장 및 기초ㆍ광역의원 후보자에 대한 정당공천제 폐지를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소관 국회 상임위인 행정안전위에는 아직 상정 조차 되지 않은 상태다. 다시 말하거니와 여야는 정치쇄신 의지를 천명하고 대선공약을 실천한다는 차원에서 기초단체장 및 기초의원 후보자 정당공천제 폐지 문제에 대해 조속히 결론을 내려야 한다. 머뭇거릴 경우 ‘기득권 지키기’라는 국민 비판여론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국민은 의원 세비 30% 삭감, 연금 폐지 등과 함께 내걸었던 정당공천제 폐지 공약이 지켜지는지 주시하고 있다.
이번 4ㆍ24 재ㆍ보선이 정당공천제 폐지를 실현하는 무대가 되어야 한다. 만일 4ㆍ24 재ㆍ보선 이전에 공직선거법을 개정하는 것이 일정상 어렵다면 여야가 정치적 합의를 통해서라도 이번 재ㆍ보선에서 정당공천을 하지 않으면 된다. 새누리당이 무공천 입장을 밝힌 만큼 이제 공은 민주통합당으로 넘어갔다. 민주당 박용진 대변인은 “선거법 개정 전에는 기초의원 등에 대한 공천을 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밝혔으나 궁색한 논리다. 민주당도 대선공약을 이행할 의지가 있다면 새누리당의 제안에 화답하는 것이 마땅하다. 대선에서 약속한 대로 최소한 기초의원 후보만이라도 공천을 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 만일 새누리당이 후보를 내지 않은 선거에서 민주당 공천을 받은 후보가 당선된다 하더라도 민주당이 `승리`를 주장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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