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숲에 내리는 황금빛 노을이기보다는 구름 사이에 뜬 별이었음 좋겠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버드나무 실가지 가볍게 딛으며 오르는 만월이기보다는 동짓달 스무날 빈 논길을 쓰다듬는 달빛이었음 싶어. 꽃분에 가꾼 국화의 우아함보다는 해가 뜨고 지는 일에 고개를 끄덕일 줄 아는 구절초이었음 해. 내 사랑하는 당신이 꽃이라면 꽃피우는 일이 곧 살아가는 일인 콩꽃 팥꽃이었음 좋겠어.이 세상의 어느 한 계절 화사히 피었다 시들면 자취 없는 사랑 말고 저무는 들녘 일수록 더욱 은은히 아름다운 억새풀처럼 늙어갈 순 없을까 바람 많은 가을 강가에 서로 어깨를 기댄 채우리 서로 물이 되어 흐른다면 바위를 깎거나 갯벌 허무는 밀물썰물보다는 물오리 떼 쉬어가는 저녁 강물이었음 좋겠어 이렇게 손을 잡고 한세상을 흐르는 동안 갈대가 하늘로 크고 먼 바다에 이르는 강물이었음 좋겠어<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내가 사랑하는 당신에게 바라는 순수한 마음의 시다. 황금빛 노을처럼 화려하거나, 만월처럼 너무 환한 모습을 바라지 않는다. 보일 듯 말 듯 구름 사이에 뜬 별이었음 좋겠고 가득 차지 않은 달빛으로 논길을 쓰다듬어 주었음을 좋겠다는 바람인 것이다. 들꽃인 구절초처럼 있는 듯 없는 듯해도 자신의 존재가 확실한 향기를 가진 꽃이기를 바라고 늙어 갈수록 은은해지는 억새 풀이기를 바라는 마음, 곧 자신의 모습이기도 했다. 이렇게 소박한 모습을 바라는 시인도 늘 이런 소박한 마음이기를, 한결 같기를 바란다. 산 곁에 있고, 나무 곁에 있었던 시인의 모습은 우리들에게 꿈이었다. 산골 시인으로 오래 남았으면 했다. 우리들은 바라지 않았지만 멀리서 바라보니 왠지 바위를 깎거나 갯벌 허무는 밀물 썰물이 되어가는 듯했다. 저녁 강물처럼 은은한 우리들의 시인이시길, 영원히 물오리 떼 쉬어가는 저녁 강물이길 바라고 있다. 소박한 마음 한자락 내맡길 수 있고 곁에 있으면 그저. 편안하기만 한 그 모습… 그대로의 따듯한 눈매의 시인 그 모습 그대로…<박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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