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고의 부촌 화시(華西)촌을 일군 화시촌 전 서기 우런바오(吳仁寶.85)가 18일 암으로 사망했다고 신화통신이 전했다.
화시촌은 중국에서 가장 잘사는 동네이자, 공동번영의 이상을 성공적으로 실현한 지역으로 꼽히며, 이런 성공에는 일생에 걸친 우런바오의 지도력이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평가된다.
우런바오는 지난 1957년 장쑤(江蘇)성의 빈촌인 화시촌 당서기로 부임한 후 사업을 통해 마을의 발전시키기로 마음먹고 1961년부터 주민들을 설득해 양어장 건설 등 마을을 기반으로 한 자체 사업을 시작했다.
`화시촌의 신화`는 이렇게 작게 시작됐지만 마을주민들이 사업을 통해 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면서 마을의 공동산업 규모는 점차 커졌다. 화시촌은 문화대혁명이 한참이던 시절에도 비밀리에 철강공장을 건설하는 등 수익사업에 매진했다.
우런바오는 1978년 공장 등 마을의 자산과 주민을 통합한 `화시그룹`을 설립했다. 주민이 주주이자 직원으로 참여하면서 화시촌이 마을이면서 기업집단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화시촌은 남들보다 빨리 철강, 직물 등의 사업에 뛰어들어 시장을 선점한 덕에 개혁ㆍ개방 시기를 맞아 번영을 거듭했다.
현재 화시촌의 연간 판매액은 500억 위안(약 8조9천억 원)이며 지난해 주민 1인당 소득은 8만8천 위안에 이른다. 주민들은 모두 촌에서 나눠준 가자용을 소유하고 있고 별장식 주택도 갖고 있다. 화시촌은 스스로를 `천하제일촌`이라고 부르며 자부한다.
우런바오는 화시촌의 성공을 이끌었지만 사실상 종신 서기로, 그룹의 회장처럼 군림해왔다. 이 때문에 그는 `화시촌의 리콴유`로 불리기도 한다. 또 중국에서 개혁ㆍ개방이 시작되기도 전에 자본주의적 실험을 통해 마을을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화시촌의 덩샤오핑`이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화시촌의 성공으로 그는 2005년 타임지에 커버 인물로 소개되기도 했다.
그의 아들인 우셰언(吳協恩)이 현재 화시촌 서기이자 주임, 화시집단 회장으로 화시촌을 이끌고 있다.
이 때문에 우런바오는 화시촌의 오늘을 있게 한 인물이지만 시간이 지나가면서 마을을 그의 가족이 주도하는 사유물로 변질시켰다는 비난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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