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3월 미국의 이라크 침공 8일 후, 당시 미국 국방부 부장관인 폴 울포위츠는 의회에 출석해 자신 있게 말했다.
"재건 비용을 자체적으로, 또 비교적 이른 시일 내 조달할 수 있는" 나라인 주요 산유국 이라크와 협상을 벌이고 있으니 전비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10년 후 이라크 전쟁의 강력한 옹호자였던 울포위츠 부장관의 호언은 완전히 어긋났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9일 미국은 이라크 전쟁으로 군비 및 재건 비용 측면에서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며 특히 경호, 물류, 재건관련 민간 업체들에 최소 1천380억 달러(약 154조원)를 지출했다고 전했다.
FT는 자체 분석 결과라며 미국과 외국 기업들이 이라크 전쟁으로부터 돈을 벌어들였으며 계약액 기준 상위 10개 업체의 경우 서로 최소 720억 달러의 거래를 주고받았다고 밝혔다.
계약액 수위 업체는 식수와 식량 공급 등을 맡은 KBR로, 10년 동안 395억 달러의 계약을 따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 회사는 조지 W. 부시 정권 때의 딕 체니 부통령이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에너지기업 핼리버튼의 자회사였다가 2007년 분리된 바 있다.
쿠웨이트의 물류회사와 석유회사가 각각 72억 달러와 63억 달러로 2,3위를 기록했다.
이 같은 실적을 볼 때 미국 정부는 이라크 전쟁 당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민간기업을 이용했으며 때때로 전쟁터에는 군병력보다 민간 계약업자가 많았을 정도라는 게 FT의 설명이다.
민주당 소속의 클레어 매캐스킬 연방 상원의원은 "이들 숫자는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며 "지난 10년간 우리는 국민 세금 수십억 달러가 우리 군의 임무와 거의 관계가 없거나 아예 없는 서비스와 사업들에 쓰이는 것을 목격했다"고 주장했다.
민간업체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메리안 구치 KBR 대변인의 말처럼 "적대적이고 복잡하며 예측 불가능한 환경 아래서 힘들게 임무를 수행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라크 전쟁이 끝나고 아프가니스탄 전쟁도 미국의 참전 규모가 축소되면서 손쉬운 돈벌이는 끝났을지 모르나 이들 기업의 사업은 이어지고 있다.
이라크의 경우 미군이 마지막으로 2011년 11월 철수했지만 지금도 5천500명의 경호원을 포함해 약 1만 4천 명의 민간인들이 활동하고 있다.
2011년 미국 국무부는 민간 경호업체들을 이용, 바그다드의 거대한 외교단지를 보호하는데만 앞으로 5년 동안 30억 달러가 들 것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석유회사들이 바스라 등 이라크 지역에서 사업을 확대하면서 이들 기업에도 새로운 수입원이 생기고 있다.
사정이 이렇지만 미국 국방부의 계약 관리는 여전히 허술하고 이미 드러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라크 재건사업 특별감사관인 스튜어트 보웬은 "안정화나 재건작업과 관련해 부처 간 협력 등 측면에서 짜임새가 없는 게 현실"이라며 "이는 가장 심각하면서도 계속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FT는 이번 조사가 이라크와 이웃 쿠웨이트에서 이뤄진 연방 정부의 계약 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며 일부 계약이 눈을 피해 이뤄진 점을 감안하면 자신들이 제시한 수치도 보수적으로 잡은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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