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나의 신조가 있어 행동하였고 그러하기에 근본적으로 인간 최남선이가 참회를 한다는 것은 내 자신으로 이론의 곤란한 문제이올시다. 참회할 만한 대역도 대죄도 범하였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나의 행동의 전체가 옳은 것이라고는 주장하지도 않습니다." 3.1독립선언문을 기초한 육당 최남선(1890∼1957)은 1948년 3월 5일자 `평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후회의 심경이 어떠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육당은 "과거의 행동을 합리화시키려거나 혹은 숨기려 하지 않는다"면서 "나의 저지른 정도의 죄과에 대해서는 나 스스로 인정 반성하며 참회도 할 때가 올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육당은 인터뷰 이듬해 친일 반민족 행위로 기소돼 수감생활을 했다. 학병 권유에 대해서는 "만약 그날(해방)이 오게 되면 실권을 잡을 수 있도록 준비해야 되겠으니 젊은 청년 다수를 학병으로 보내 군사훈련을 시킬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전제로 학병을 찬성했다"면서 학병 지원자가 적어 `총독에 대하여 면목이 없게 되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육당은 3.1독립선언문을 기초하고도 33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3.1운동을 민족윤리운동으로 체득하고 그 실천을 위하여 문안을 기초한 것인데 그 운동이 정치운동으로 내 의도와는 달리 진전됐다"면서 "거족적 민족윤리운동에 기독교나 천도교가 독점하며 중심이 되는 감이 농후하여 가기에 서명을 거절했다"고 해명했다. 육당은 "문안은 내가 기초하였으나 이 운동에는 나의 주관대로 참가한 것이지 결코 그 운동으로 민족자결이 실현되리라고는 믿지 않았던 것"이라 설명했다. 인터뷰는 김종욱 공연예술자료연구사가 발굴했고, 계간 `연인` 봄호에 실렸다. 잡지에는 소설가 김내성(1909∼1957)의 단편 `창공의 곡예사`와 수필 `나의 청춘기`도 발굴돼 실렸다. 노천명 시인의 추모시 `김내성 선생을 곡함`과 소설가 정비석의 추모글 `김내성 형 이야기`도 수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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