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다리 내놓아라.” 혹은 “빨간 종이 줄까 파란 종이 줄까?” 또는 “네 이놈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원통해서 못살겠다.”며 한여름 밤을 공포물로 시원하게 보내주던 드라마가 한 편 있었다. 이름 하여 <전설의 고향>. 지금 세대들은 잘 모를 수 있는 드라마이고, 요즘처럼 볼 것 많은 시대에 무덤이 갈라지고, 꼬리가 아홉 개 가 달린 여우가 나타나는 드라마는 더 이상 찾지 않는다. 그러나 당시 7080세대에서 드라마 <전설의 고향>은 손꼽아 기다리는 그야말로 현대판 <더 글로리>가 아닐 수 가 없다. 그리고 화면에 빨간색으로 마치 피가 줄줄 흘러 내리 듯 <월하의 공동묘지>가 방송이 되면 그야말로 전국은 공포의 물결 속에서 한여름의 더위는 사라진다.전국 각 지역에서 내려오는 전설이나 민담 등을 드라마로 옮겨놓은 곳이 <전설의 고향>이며, 대개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날카롭기만 하고 너무 디테일(Detail)한 일본의 공포영화와는 달리 우리 전설의 고향은 우리 정서와 많이 공감한다. 영상이 세련되지 않았어도 그 내용은 알차고 다양하다. 대개의 내용은, 양반집에 종놈으로 있던 아버지를 가마니로 말아 때려죽이고, 어머니를 탐하고 어린 딸까지 범하려다 우물 속으로 몸을 던진 하녀이야기. 그 원혼이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원귀가 되어 구천에 떠돌다 자신이 모시던 대감 집으로 가서 원한을 갚는다. 혹은 새로 부임한 마을 원님 댁에 억울함을 호소하러 갔다가 사또가 놀라서 죽게 되고, 계속 신임사또들의 죽음에 촉각을 세우는 내용이다.그런데, 이 줄거리를 가만히 살펴보면 오늘 날의 권력형 인권유린을 그 드라마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부하직원을 본인의 방으로 불러 불필요한 신체적인 접촉을 한다든지, 혹은 진급이나 기타 저항할 수 없는 이유로 약한 위치의 사람들에게 저질러지는 폭력이 그것이다. 처음에는 무섭게만 느껴졌던 흰 소복을 입은 여인네의 모습을 어른이 되어 다시 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저 입에서 피를 흘리고 눈 주위에 매서운 분장을 하며 사람들에게 눈을 흘기던 그런 단순한 귀신이야기가 아니었다. 최근 <갑질>이라는 형태로 나타난 거대한 현상은 <갑>과 <을>로 대표되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생겨난 말이다. 사회 경제적으로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람이 권한을 남용하는 것이다.이로 인해 우월적 지위에서 비롯되는 영향력을 행사하여 상대방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부당한 요구나 처우를 말한다. 그냥 부당함을 받아들이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닌, 자신의 내부에 일어나는 자존감의 붕괴, 수치심, 좌절감 등의 정신세계와 체계의 몰락을 가져온다. 그리고 이것은 일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갑과 을의 수행적 사회구조적인 문제인 것이다. 기업이나 군대 등으로 대표되는 조직사회에서 일가의 인물들이 직원을 마치 물건다루 듯, 폭언을 마구 일삼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그 모멸감을 당한 회사 직원은 자신이 당한 부당함에 복수라도 하듯, 하부업체에 무리하고 부당한 요구를 일삼으며 전횡을 일삼는 것.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건만 하더라도 셀 수도 없을 정도이다. 과거의 일로 다시 매스컴에 등장하는 것 역시 해당 기업에 부담이 되니 적시하지는 않지만 그 어두운 기록은 계속 남아있다. 군대 역시 마찬가지이다. 귀한 자식을 국가의 부름에 응해서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하러 보냈을 때, 국가는 이들을 책임지고 돌봐야 한다. 그리고 이들에게 적절한 보직을 부여하고 국방의 의무를 마친 후 무사히 가정으로 돌려보내야한다. 그러나 군 역시 갑질과 횡포에서 자유롭다고 말하기 어렵다. 쌍팔년 군대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나 아직 갈 길이 멀다. 마치 사병을 짐꾼 정도로만 알고 자신의 관사청소를 시킨다든지, 아이들 공부 도우미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떠올리기도 싫은 군내 자살과 은폐, 유가족의 눈물 등, 폐쇄된 사회에서의 갑질은 언제나 흔히 일어날 수 있다. 상관이라는 자리가 무소불위 특권은 아닐 텐데 특권의식은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어린 후임을 잘 돌보고 공동의 임무인 국방에만 신경을 쓰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수 십 억짜리 탱크와 헬리콥터, 항공기를 정비하며 국가가 자신에게 부여한 자격. 그것을 지키고 임무를 수행하는 장병들에 최고의 대우와 존중을 해주어도 부족하다. 오히려 바깥에서는 군 미필자를 고운 눈으로 보지 않는 분위기이다. 기타 사회 전반 곳곳에 인권유린이 일어나는 곳을 찾아서 모두가 고쳐나가야 한다. 살기 좋은 나라와 그 문화는 누가 와서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는 사회, 모두가 불의에 공분하며 제도를 개선하는 사회. 지금 이 시간에도 약한 고리로 불리는 취약계층에서 크든 작든 겪게 되는 인권유린, 그 수치심을 다시 한 번 더 살펴보자. 그러고 보니, 벌써 <전설의 고향> 시절, 소복에 입술에 피를 흘리며 원한을 갚아달라는 귀신의 등장은 이미 인권유린을 예고했었다. 그저 아무것도 모른 채 드라마에 나오는 귀신을 무서워만 했던 그 시절의 순진함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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