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터 거닐다 주워 온 깨진 질그릇 하나닦고 고이 닦아 열 오른 두 볼에 대어 보다.아무렇지도 않은 곳에 무르녹는 옛 향기라질항아리에 곱게 그린 구름무늬가금시라도 하늘로 피어날 듯 아른하다.눈감고 나래 펴는 향그러운 마음에머언 그 옛날 할아버지 흰 수염이아주까리 등불에 비치어 자애롭다.꽃밭에 놓고 이슬 받아 책상에 올리면그 밤 내 베갯머리에 옛날을 보리니옛날을 봐도 내사 울지 않으련다.<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조지훈 선생(1920년12월3일~1968년5월17일)을 기리는 마음으로 적어 본다. 본명이 동탁(趙東卓),본관은 한양이다. 경상북도 영양(英陽)에서 탄생, 아버지는 조헌영(趙憲泳), 어머니는 전주 류씨(全州柳氏)이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로부터 한학을 배운 뒤 보통학교 3년을 수학하고 1941년 21세에 혜화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했다. 오대산 월정사에서 불교전문강원 강사를 지내기도 했다. 1942년에 조선어학회 『큰사전』 편찬위원이 되었다. 1947년부터 고려대학교 교수로 재직했고, 6·25전쟁 때는 종군작가로 활약한 경력이 있다. 만년에는 시작(詩作)보다는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초대 소장으로 『한국문화사대계(韓國文化史大系)』를 기획하고 추진했다. 「고풍의상(古風衣裳)」「승무(僧舞)」,「봉황수(鳳凰愁)」의 대표작이 있으며 『청록집(靑鹿集)』(1946), 『풀잎단장(斷章)』(1952), 『조지훈시선(趙芝薰詩選)』(1956), 『역사앞에서』(1957)에 수록된 작품들이 있다. 역사의식이 뚜렷하고 항일정신이 투철했던 시인에 대한 일화도 많다. 항일 집회를 한다고 일본 경찰이 총을 들이대며 발사 직전, 일촉즉발의 상황에 놓였을 때 그 곳에 모인 많은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며 움츠러들었는데 오로지 조지훈 시인만은 그 자리에서 꼿꼿이 서 있었다고 한다. ‘쏠테며 쏴 봐라. 나는 너희 놈들에게 굽히지 않겠다’는 의지를 가감 없이 보여준 것이었다. 그 서슬 푸른 기개에 놀란 일경들이 차마 총을 쏘지 못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성터를 거닐다 주워 온 깨진 질그릇 하나를 보고 저토록 깊은 정을 느낄 수 있는 시인의 마음이 고귀해 보인다. 질그릇을 구웠을 가마의 열을 느끼고 구름을 그렸을 화가의 정취를 감지할 수 있는 감수성이 따뜻하다. 아주까리 등불에 비치는 할아버지의 흰 수염을 떠올리는 것은 시인은 할아버지로부터 한학을 배운 탓도 있다. 엄격하시지만 자애로웠던 할아버지를 그리워 하는 마음이 향기처럼 피어난다.그 강인함을 숨기고 ‘옛날을 봐도 내사 울지 않으련다.’하신 말씀이 귀에 쟁쟁히 울리는 듯하다. 참 멋진 분이다.< 박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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