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병은 잔에다자기를 계속 따라주면서속을 비워간다 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길거리나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문 밖에서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빈 소주병이었다<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빈 소주병, 누군가를 위해 비워버린 모든 것, 우리들 아버지의 모습이 소주병과 닮아 있다. 자신 안에 담겨진 모든 것을 내어주고 자신은 점점 비어가는 소주병 같다. 자식들을 위해 가정을 위해 쓸개도 내놓고, 배알도 이미 던진 지 오래다. 왜 화를 낼 수 없었겠는가. 치밀어 오르는 분노가 왜 없었을까. 무시당하고 인간 취급 못 받으며 짓밟힐 때 왜 울컥 쏟아내지 못했단 말인가. 할 말이 없어서였을까. 아니다. 이를 악물고 참았을 뿐이다. 힘줄이 튀어 나올 정도로 두 주먹을 쥐고 하늘을 올려다봤을 것이다. 하늘에 그려진, 자기만 바라보고 있는 불쌍한 아이들의 얼굴, 가여운 아내의 얼굴이 떠올라 참을 수밖에 없는 서러움과 울분을 꿀꺽 삼키곤 했을 것이다. 소주병을 기울이며 마음을 달랬을 것이다. 그래도 소주 몇 잔이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 주면 밤늦은 시각, 가난한 자신의 집으로 발길을 돌렸을 것이다. 방문을 열어주는 아내가 술 냄새 난다고 부리는 투정도 그저 좋은 듯 웃으며 방바닥에 풀썩 쓰러져 그대로 잠들었을 고단한 아버지의 모습이떠오른다. 쓰레기장에 이리저리 버려져있는 빈 병처럼 거친 세파에 시달리다 온 아버지가 잠속에서 흐느끼고 있다. 문 밖에서 소리 죽인 채 울고 있다. 우리들의 아버지가 슬픔을 삼키고 있다. <박모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