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계 고등학교, 정확히는 공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한 우리는 삼총사였다. 운이 좋게도 내겐 전교 1~2등 하는 친구가 곁에 있었지만 성적보다는 무척 살갑게 서로를 챙기는 좋은 사이였다. 어느 날, 친구 <종헌이>가 <오익이>에게 물었다. “너는 공부만 하다 보니 애가 얼굴이 하얗게 되어가지고 마치 폐병환자 같아.” 그러자 오익이는 “아니야. 요새 공부도 하나도 안하고 놀기만 해서 얼굴이 좋아 진거야.”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내겐 이상한 패배감이 들었다. ‘두고 보자 이번 학기 성적 전교 상위권은 아마 내가 될 거야.’ 이렇게 마음속으로 칼을 갈며 그 친구들의 레이더망에서 벗어난 난 절치부심 공부에 매달렸다. 이 때 먹은 마음이 목숨을 구하는 일생일대의 큰 사건이 발생한다.당시 가난한 집에서 기름보일러나 연탄보일러 같은 것은 없었다. 그저 구공탄을 때고 아주 추운 겨울날을 날 뿐이었다. 이미 눈에 독이서려 전교1등만이 살길이라고 책 한권을 다 외워버릴 것 같은 투지를 불태운 난 저녁 늦게 12시에 잠을 자면서도 ‘새벽4시, 새벽4시’를 마음속으로 수없이 뇌이며 잠을 청했다. 다행이 그런 무의식의 외침에 난 새벽4시에 잠을 깼다. 그러나 눈을 떴을 땐 자기 몸 하나 가누지 못할 만큼 연탄가스에 질식되어 삶과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고 있었다. 겨우 방에서 기어 나와 방문을 열고 쓰러지며 “엄마. 엄마.” 이 말만 가늘게 뱉으며 흰 침을 거칠게 내 뿜으며 쓰러졌다. 새벽 잠을 주무시던 부모님에 의해 구조되어 목숨을 구했다.평소같이 몇 시간만 더 골방에서 잠을 자고 있었더라면 난 지금 이 세상 사람의 목숨이 아니었다. 그 사건이 있은 이후, 난 그 친구들이 더 할 수 없이 좋았다. 최소한 생명의 은인이었다. 그 학기 전교 1등은 친구 <우종헌>이가 되었다. 그 친구는 매사에 깊이가 있고, 최선을 다하는 보기 드문 모범생이었다. 그저 그런 친구를 둔 것이 자랑스러울 뿐인 멋진 친구였다. 다시 고교시절, 기말고사 시험 기간이었다. 그 친구 집에서 잠을 자며 서로 12시를 기점으로 먼저 자고, 깨워주고 공부 교대하기로 약속했다. 12시 나의 시간이 되어 책상에 가니 그 아래 세숫대야가 있었고 그 안에는 차가운 얼음이 있었다. 그것이 뭔가 물어보니 얼음물에 발을 담구고 공부를 했다는 것이었다.그 이야기를 듣고 나도 밖에 나가서 세숫대야에 물을 갈고, 얼음을 한 바가지 담아 방에 들어왔다. 발을 담는 순간 바늘과 칼끝 같은 날카로움이 발을 찔러 금방 물리고 말았다. 도저히 감당이 안 되어 그냥 졸면서 공부를 하고 새벽에 깬 친구에게 “모진 놈” 그러면서 물어보았다. 그 친구의 대답은 익히 예상은 했지만 너무나 아팠다. “난 1등이 되지 못해 전면 장학생으로 선정되지 못하면 더 이상 학교를 다닐 수가 없어. 내겐 공부가 그냥 공부가 아니다.” 그 말을 듣고 너무나 놀랐다. 이 이야기는 고작 18세 고등학교 2학년 아이들의 대화내용이다. 그렇게 어렵게 그 힘든 구간을 지난 친구는 대학을 진학하고 오랜 기간 내겐 본받고 살아가야할 훌륭한 멘토같은 친구였다.또 다른 친구 <권오익>은 부잣집 아들이었다. 모든 것이 풍족했고 공부에 대한 동기가 부족할 수도 있었지만 그 친구는 승부사 기질이 있었다. 그 순간 자신이 해야 할 임무를 잘 알고 있었고 학창시절 끊임없이 <종헌이>의 강력한 라이벌이었다. 기억으로 단 한 차례 1등을 쟁취한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들은 모두 서로에게 좋은 친구들이었고, 함께 주윤발이 나오는 <영웅본색>을 보며 우리의 우정을 깊게 쌓아갔다. 그렇게 모두는 대학을 진학하고 군입대를 했다. 제대를 앞두고 친구 <오익이>의 집이 망했다. 아버지 사업실패로 전역휴가를 나왔을 때 갈 곳이 없었다. 우리는 대구 염매시장 난전에 앉아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모범생인 그 친구의 눈물을 보았다.하객이 아무도 없는 쓸쓸한 결혼식, 어머니와 내가 유일한 하객이었다. 어머니는 용기를 잃지 말라 시며 친구의 어깨를 토닥였다. 결혼생활 중소기업에서 어렵게 돈을 모아 못다 한 대학 졸업을 마치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 친구는 사업에 성공하여 수 십 명 직원의 가정을 책임지는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당시 그 아픔을 기억, 20대부터 60살까지 잠을 4시간 이상 자 본 적이 없다고 <명사초청특강>에서 말했다. 그 아픔이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 내 영혼의 멘토 <종헌이>는 역시 삶의 우여곡절을 겪었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삶의 그래프에서 고점과 저점을 넘나드는 곡선을 그리며 어제 딸아이 결혼식에 나섰다.우리의 아름다웠던 10대, 그 추억은 그렇게도 치열하고 총알이 없는 전선과도 같았다. 혹자는 그렇게 말한다. “7080시절, 그래도 취업은 수월하게 하지 않았나요?” 그 이야기에 답을 들려주고 싶다. 세상에는 쉬운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고.... 이제 환갑도 훌쩍 넘기고 떠나간 딸아이의 뒷모습에 눈물짓는 영혼의 멘토인 그 친구를 생각하며, 이 칼럼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그 친구에게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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