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물등급위원회가 해외에서 예술성을 인정받은 작품들에 국내 상영이 아예 불가능한 `제한상영가` 등급을 잇달아 매기면서 현 영상물 심의제를 둘러싼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14일 영등위에 따르면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젊은영화상을 받은 레오 카락스 감독의 `홀리 모터스`를 국내 개봉 전 심의해 지난 12일 `제한상영가` 판정을 내렸다.
영등위는 "성기 노출 장면이 1분55초 가량 지속적이고 구체적으로 묘사가 됐다"고 판정 배경을 설명했다.
이에 관해 영화수입사 오드 측은 "해당 장면에서 성행위가 전혀 없는데, 제한상영가 등급이 나와서 이해하기 어렵다. 제한상영가는 영화를 상영하지 말라는 얘기인데, 그런 등급이 존재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수입사는 문제 장면을 뿌옇게 처리해 재심의를 요청했다.
레오 카락스 감독의 `홀리 모터스`. 프랑스의 권위 있는 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올해의 영화` 1위에 꼽혔다.
영등위는 지난해 11월에도 베니스국제영화제 퀴어라이온상 수상작인 전규환 감독의 `무게`에 제한상영가 판정을 내렸다. 역시 선정성이 과도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따라 `무게`는 아직까지 국내 영화관에서 개봉을 못하고 있다.
2011년 베니스영화제 `오리종티` 부문에 초청된 김경묵 감독의 `줄탁동시` 역시 지난해 성기를 일부 노출하는 한 장면이 문제가 돼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고 이 부분을 모자이크 처리한 뒤에야 개봉할 수 있었다.
폭력성을 이유로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영화도 있다. 김선 감독의 `자가당착:시대정신과 현실참여`는 마네킹의 목을 자르는 장면이 문제가 돼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다.
이 영화는 특히 현실 정치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영등위의 제한상영가 등급 판정이 정치적인 탄압 아니냐는 논란마저 일었다. 한국영화감독조합,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한국독립영화협회 등 영화 단체들은 영등위 심위에 반발하는 성명을 냈고 감독은 행정소송까지 냈다.
영화계는 `제한상영가` 등급을 상영할 수 있는 영화관이 전무한 국내 실정에서 제한상영가 판정은 이런 영화를 상영하지도, 만들지도 말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라고 반발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를 크게 위축시키고 관객의 볼 권리를 침해한다는 비판이다.
이런 문제는 제한상영가 등급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관이 없어진 2000년대 초반부터 계속 제기돼 왔으며, 2008년에는 한 영화수입사가 제한상영가 등급을 규정한 `영화 및 비디오물 진흥에 관한 법률`에 위헌 소지가 있다며 헌법소원까지 냈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제한상영가 기준을 정한 조항은 이 등급의 영화가 어떠한 법률적 제한을 받는지만 규정할 뿐, 제한상영가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를 밝히지 않고 다른 규정에도 내용이 없어 도대체 짐작하기가 쉽지 않아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난다"며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후 법은 대폭 개정된 것이 아니라 제한상영가 기준을 "선정성·폭력성·사회적 행위 등의 표현이 과도하여 인간의 보편적 존엄, 사회적 가치, 선량한 풍속 또는 국민정서를 현저하게 해할 우려가 있어 상영 및 광고·선전에 있어 일정한 제한이 필요한 영화"로 좀더 자세하게만 규정했을 뿐 법 자체는 계속 존속돼 왔다.
어떤 영화가 이런 규정에 해당하는지 판단 기준이 모호하고 심의자의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여전히 큰 셈이다.
이를 두고 영화계는 끊임없이 심의 논란을 일으키는 정부 주도의 영상물등급위원회에 맡길 것이 아니라 민간 자율 심의 형태로 바꿔야 한다고 요구한다.
이은 한국영화제작가협회장은 "어떤 영화에 대해 실질적으로 상영을 불가하게 하는 현재 심의 제도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며 ""어떤 방향에서든 개선돼야 하고 큰 원칙에서는 민간 심의 기구로 바뀌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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