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북벌정책을 추진하던 효종은 하멜 일행에게 그들이 남만에서 왔으므로 남(南)씨 성을 하사하고 각자 이름도 지어주며 벨테브레처럼 하멜 일행을 훈련도감에 소속시켜 벨테브레의 휘하에서 무기제조에 기여토록 배려하였다. 이때 하멜의 조선식 이름은 ‘남하면’이었다. 그러나 하멜은 벨테브레만큼 조선에서 필요로 하는 인물로 인정받지 못하였고 한양에 체류하는 3년 동안 훈련도감에서 큰 실적을 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도 효종은 이들을 호의적으로 대하며 그들의 귀국 요청을 들어줄 생각도 했으나 당시 조정의 관료들은 완강히 이들을 국법에 따라 처리해야 하며 국외로 송환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 배경에는 또 다른 하나의 사건이 빌미가 되기도 하였다. 그것은 하멜 일행이 한양에 체류하는 동안에 청나라 사신을 통해 탈출을 시도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멜 일행 중 2명, 즉 헨드릭 얀스와 헨드릭 얀스 보스가 청나라 사신에게 접근하여 송환을 호소함에 따라 자칫 외교적 문제로 비화될 뻔 했던 사건을 저질렀던 것이다. 이에 대하여 조정에서는 이들을 참형에 처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으나 효종과 인평대군의 배려로 전라병영으로 유배 보내는 것으로 사건을 종결토록 했다. 당시 이들이 청나라 사신을 가로막고 본국으로 송환시켜 줄 것을 하소연한 대목을 효종실록에서는 이렇게 적고 있다. 당초에 남만인(南蠻人) 30여 인이 표류하여 제주에 이르렀으므로 목사 이원진이 이들을 잡아서 서울로 보내었다. 조정에서는 늠료를 주고 훈련도감의 군오에 나누어 예속시켰다. 청나라 사신이 왔을 때에 남북산(南北山)이라는 자가 길에서 청의 사신에게 직소하며 고국으로 돌려보내 주기를 하소연하니, 청 사신이 크게 놀라 우리나라로 하여금 이들을 잡아두고 기다리게 하였다. 남북산이 애를 태우며 먹지 않다가 죽었으므로 조정이 매우 근심하였으나, 이후 청나라 사신은 끝내 더 묻지 않았다. (初南蠻人三十餘人 漂到濟州 牧使李元鎭 執送于京師 朝廷給廩料 分隸於都監軍伍 及淸使來 南北山爲名者 直訴於路上 請還故國 淸使大驚 使本國收繫以待 北山躁懣不食而死 朝廷甚憂之 淸人終不問) 여기서 청나라 사신에게 다가가 본국으로 송환해줄 것을 하소연한 사람은 일등항해사 헨드릭 얀스와 포수 헨드릭 얀스 보스였다. 하멜의 기록에 의하면 이들은 땔감 나무를 하러간다는 핑계를 대고 숲 속으로 가서 청의 사신단이 지나기로 되어 있는 길가에 숨어 있었다. 수백 명의 기병과 보병의 호위를 받으며 지나가는 청 사신 일행의 대열을 뚫고 들어가 칙사가 탄 말의 고삐에 매달려 입고 있던 조선 옷을 벗어버리고 속에 입었던 네덜란드 복장을 내보이며 고국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하소연을 한 것이었다. 순간 커다란 소동이 일어났다. 여기 효종실록에 기록된 남북산(南北山)은 하멜일행 중의 일등항해사 헨드릭 얀스 보스의 조선식 이름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실록에서는 남북산과 함께 청나라 사신에게 달려갔던 남이산(南二山)에 대하여는 기록하지 않고 있다. 아마도 사관은 남이산이 처형된 사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지 않았던 듯하다.    이 시기는 청나라가 조선의 군사력 증강에 대하여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일 때였고 효종이 구호로 내세운 정치적 제스처이기는 하였으나 청나라를 공격하려는 북벌의 의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남이산의 처리 문제는 군사기밀 문제로 다루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이런 극비의 사실은 역사적 기록에서 삭제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왕조실록의 기록이라고 하여 100% 진실만 기록한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착각일 수도 있다. 때로 실록은 집권 세력의 정치적 반영물이기도 하다. 수정실록을 편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집권세력들은 실록청이 설치되면 감수회의를 열어 그들에게 불리한 기사는 최대한 줄이려 할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사실이 숨겨지기도 하고 왜곡되어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다. 이것이 조선왕조실록이 가지는 한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역사 연구자들은 왕조실록을 이해함에 있어 기록의 이면과 행간, 그리고 사관의 평까지도 세세히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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