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익스큐즈미, 그거 어떻게 해요?” 통닭과 프랑스 와인, 볶음밥, 그리고 화룡점정인 라면. 한 상 가득 차려 놓고 게스트하우스에서 게걸스럽게 먹고 있었다. 주위를 지나가던 캐나다, 미국 여대생들이 우리가 먹고 있던 통닭에 관심을 보였다. 정확히는 통닭을 집어 먹던 젓가락을 주시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무젓가락 하나로 통닭의 속살까지 들고 깔끔하게 먹으면서 긴 라면까지 후후 불어먹으니 신기했나 보다. “아. 이거요? 쉽지 않은데……. 그렇지만 무엇이라도 다 잡을 만큼 강력하답니다.” 그러자 그쪽 무리의 한 여학생이 말했다. “그러면 저희와 대결 한 번 해 볼까요? 통닭을 포크로 먹는 것이랑, 젓가락을 먹는 것이랑, 어떤 것이 더 효율적인지?”프랑스 남동부의 호수가 매우 아름다운 도시 안시(Annecy)의 어느 유스호스텔. 갑자기 벌어진 동서양의 <통닭 먹기> 경쟁. 이를 통해 도구의 인간, 호모 파베르(Homo Faber)의 진화에 대한 검증할 기회가 생겼다. 내심 자신감을 숨기고 제안을 한 젊은 여대생의 미묘한 미소가 거만스레 입술 위쪽을 향한다. 지는 팀이 <게스트 홀>에서 자신들의 그릇을 설거지해준다는 조건이었다. 통닭 반 마리씩, 다리도 하나씩 공평히 나눈 다음 캐나다 여학생은 포크와 나이프를, 한국을 대표한 우린 무심하듯 주어진 거친 나무젓가락을. 경기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승부는 기울어지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도구의 우수성뿐만 아니고 배고픔의 차이도 있었다.프랑스와 스위스에 출장 갔다가, 기절할 만큼 비싼 스위스 물가에, 생활은 프랑스에서 업무는 스위스에서 보며 지냈다. 며칠을 고생한 끝에 우연히 발견한 대형할인점 <까르푸>에서 작정하듯 쇼핑했다. 볶음밥과 통닭에, 베이컨 그리고 매우 저렴한 프랑스 와인에 자동차 트렁크가 꺼질 만큼 많이 장을 봤다. 그런 사실도 모른 채, 우리를 설거지 먹잇감으로 생각한 저 젊은이의 기고만장한 콧대가 우습게 보였다. 내기가 시작되자마자 닭 다리부터 집어 입에 넣고 마치 탈곡기에서 곡식을 탈곡하듯 자동으로 뼈와 살을 분리하였다. 그리고는 곧 와인 한 잔으로 입을 축이고 날렵한 젓가락질과 함께 날개살, 가장 위기인 텁텁한 닭 앞 가슴살까지 순식간에 해치웠다.그야말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다만, 그 여학생은 손이 보이지 않을 만큼 현란한 포크와 나이프 질을 해댔으나 처절한 완패였다. 먼 이국땅 아래에서 모두 웃고 손뼉 치며 우리의 승리를 축하해 주었다. 자연히 우리 일행과 미국, 캐나다 연합팀으로 이곳까지 온 그 청년들과 즉석 회합이 이루어졌다. 어떻게 작은 나무 작대기 두 개로 어떻게 현란히 음식을 먹을 수 있는지 물었다. 우리 역시 승부를 떠나 포크와 나이프로 닭 다리의 구석구석까지 살점을 분리해 내는지 신기해했다. 멋진 기술이라고 덕담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쇠젓가락으로 감자탕의 돼지등뼈 구석구석 골수까지 분리하는 능력이 있었으니.젓가락 숙련공들에게 서구의 젊은이가 당해내기란 거의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웠으리라. 그러나 순간, 작은 승리에 기뻐하기보다 그들과 대화를 하면서 우린 큰 참패를 당했다. 그들은 학기 중에 이렇게 자신들이 원하는 국가에 가서 문화체험을 하며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체험한다는 것이다. 외국의 그 문화를 접하면서 거울삼아 훗날 자신의 발전을 위한 토대로 삼기 위한 자유로운 교육과정이라는 점에서 무척 놀랐다. 또 한 번 크게 완패한 것은 여대생의 자유로움과 젊음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작은 일에도 ‘까르르’ 웃으며 우정을 쌓고, 이 먼 곳까지 여행할 환경 속에 산다는 것도 놀라웠다. 그러나 이들 여대생과의 체험이 처음이 아니고, 며칠 지나지 않아 동유럽을 다니면서 그곳의 젊은이들과 어린 학생들과 만나게 된다.오스트리아 다뉴브강 변 유스호스텔 복도에서 만난 장난꾸러기 여고생들을 보았다. 우리 일행에 먼저 말을 걸어왔고, 우리 영어도 따라 하며 웃고, 호기심 넘치는 우리네 여고생의 모습이었다. 어디서 왔냐며…. 왜 왔냐며……. 입국심사관도 묻지 않는 질문 보따리를 풀었다. 삼삼오오 모여앉아 우리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독일 여학생이 오스트리아나 프랑스에 와서 이들의 문화를 배우고 소감을 작성해서 학교에 제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교실 밖 수업이 자주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얼마 전 프랑스에서 만난 대학생들의 기억이 떠올랐다. 고교과정에서 명문대 진학만을 위한 단순 암기, 시험 위주의 교육, 인성과 인격 형성보다 출세를 위한 도구로의 교육관은 다소 아쉽다. 아직도 유럽에서 만난 그들의 교육방식과 교육에 참여한 여학생들의 모습은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 교육이란 본디 사람을 기르는 일이 아닌가? 각자 교육의 방식에 따라 장, 단점이 있겠지만 그들의 체험식 교육이 긍정적인 기억으로 오래 남는다. 젓가락 사용을 처음 직접 눈으로 봤다며, 커다란 눈이 더욱 커지며 “오 마이 갓.”이라던 그 여학생의 놀라던 얼굴이 떠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