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멀리로 떠나지 못하는 까닭은제 몸에 쟁여놓은 기억이 많아서이다 얼룩종달이새의 첫울음이나 해질녘에서야 얇아지는 바람의 무늬온종일 재잘대는 뒷도랑의 물소리들나무는 그것들을 밤새 짓이겨 동그랗게 말아 올린 다음오돌톨한 뿌리에 불끈 힘을 주고선새벽녘, 달 지고 해 뜨기 전의 막막한 시간을 기다려온몸을 털어내는 것이다.그러나 어느새 멀리로 돌아온 그것들이하루 내 팽팽해진 연두빛 그늘로 몸을 바꿔 나무의 부르튼 발목을 보듬기 때문에나무는,차마 멀리로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그래서 나무는 이제밤마다 제 안을 헐어 바람을 내보내고 어두운 날개의 날 것들에게 제 몸을 내어준다 그리하여 그대의 저녁 햇살 속에 서 있는잎 많은 나무가, 게으른 해시계처럼어둠의 부피를 줄였다 늘릴 때 나무가 거느린 빽빽한 어둠들이그대의 기억을 흔들 때혹은 그것들의 수척한 눈빛이그대 언저리에 닿을 때가늘게 금이 간 창문 안에서오후의 해거름을 지키고 있는 나는여전히 그대를 기억하는 것이다나무가 제 이름을 가지에 걸쳐놓고먼 곳을 그리듯이
<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나무는 서두르는 법이 없다. 먼 하늘을 바라보며 큰마음을 키우고 햇볕을 받으며 따뜻함을 키운다. 흙의 정기(精氣)를 빨아올리며 강인한 생명력을 키우며 뿌리의 힘으로 천천히 내면을 다져 나간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쓰는 법이 없다. 내가 나무를 닮고 싶은 이유다<박모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