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떠나면서 살았다,집을 떠나고 마을을 떠나면서.늘 잊으면서 살았다,싸리꽃 하얀 언덕을 잊고느티나무에 소복하던 별들을 잊으면서.늘 찾으면서 살았다,낯선 것에 신명을 내고처음 보는 것에서 힘을 얻으면서,진흙길 가시밭길 마구 밟으면서.나의 신발은,어느 때부턴가는 그리워하면서 살았다,떠난 것을 그리워하고 잊은 것을 그리워하면서.마침내 되찾아 나서면서 살았다,두엄더미 퀴퀴한 냄새를 되찾아 나서면서싸리문 흔들던 바람을 되찾아 나서면서.그러는 사이 나의 신발은 너덜너덜 해지고비바람과 흙먼지와 매연으로누렇게 퇴색했지만.나는 안다, 그것이 아직도 세상 사는 물리를 터득하지 못했다는 것을.퀴퀴하게 썩은 냄새 속에서.이제 나한테서도 완전히 버려져폐기물 처리장 한구석에 나뒹굴고 있을 나의 신발이.다른 사람들한테서 버려진 신발짝들에 뒤섞여나와 함께 나뒹굴고 있을 나의 신발이. <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천천히 눈동자의 방향을 내려 발을 쳐다본다. 다시 신발을 본다. 잠시 생각에 잠긴다. 이 작은 발이 신발에 얹혀서 어디를 다녔던가. 시인처럼 ‘떠나고, 잊으면서’ 시간여행을 다닌 것인가. ‘비바람과 흙먼지와 매연으로 누렇게 퇴색‘하도록 다녔을 신발에게 비록 ’세상 사는 물리(物理) 를 터득하지 못했‘더라도 두 손을 모아 고마움을 전했다. 무릎 관절이 신발을 지탱하지 못할 시기가 올 때 까지 신발이 버텨 주기를, 이 작은 발과 함께 해 주기를 기원하며 고개를 숙였다. 신발을 보려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이유를 이제야 깨닫는다. 잊고 있던 고마움을 강제하는 의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갔다.<박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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