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이라는 말에는 어느덧 고서古書의 냄새가 난다 너의 벗으로부터라고 쓴 문장들붉고 노란 나뭇잎들을 갈피에 넣어 보낸너의 편지들이 보관된 서랍을 열어본 지도 오래되었다펼치면 재생 두루마리 같을 낮과 밤빛의 부레들 외롭게 들끓던 네온의 거리를 우리는 지나왔다물속으로 기우뚱한 천변의 나무들은언제나 기억의 전경前景이어서우리는 지금 기억이 스스로 문고리를 당겨햇빛과 비바람, 뭇 새들을 일가친척으로 맞았던청춘의 한때를 전신거울인 듯 들고 서 있다 그 파문 이는 물거울에뽀얀 백분 같은 시간의 흰 그림자가 떠가는 게 보인다눈물은 눈물샘 속 깊이 단단히 묻어두었으나내 영혼의 그토록 오랜 벗이여너 앓아누운 암센터까지 정신없이 오며드넓게 휘몰아치는 저 진눈깨비들지워지지 않는 기억 속저 희디흰 그림자들 내려놓을 데가 없어 우두커니링거액 반쯤 찬 겨울하늘 속으로한 덩이 매지구름이 단단히 뭉쳤다 흩어지는 것우리들 둘러싼 시간의 입자들이무수히 방울지고 출렁이는 순간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다<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벗’이란 참으로 귀중한 말이다. 쉽게 붙일 수 없는 단어다. 어려운 과정을 거쳐 긴 시간을 지나야만 붙일 수 있는 ‘벗’이란 말. 그 벗이 영원히 곁을 떠나가면 그 허전함을 달리 달랠 길이 없어진다. ‘내 영혼의 그토록 오랜 벗이여’라고 부를 수 있는 시인의 ‘벗’이 스러졌나보다. 시인의 애통한 마음이 전해진다.요즘 들어 부쩍 아까운 목숨이 많이 떠나갔다. 그 때마다 울분처럼 ‘암’을 박멸할 수는 없을까라고 외쳐댄다. 대부분 착하디착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한 이유도 있지만 그 착함으로 스트레스를 끌어안고 자신을 괴롭힌 게 더 큰 원인이 있었을 것이었다. 늘 당하기만 하고, 늘 억울하기만 하고, 그것이 상처로 자신을 긁어댔다. 아물 사이도 없이 또 들이대는 스트레스를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자신 안에서 부글거리니 독소가 찰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원인을 알면 그것을 내리쳐야했다. 그러나 힘이 없다고 자신감을 폐기처분해 버렸을 것이다. 그 현상을 박차고 나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암덩이가 좋아하는 일만 했던 것. 난 그러지 않기로 했다. 아니다고 말하고 못한다고 말하고, 최선을 다하면 결과에 연연해 안할 것이다. 암 덩치를 결코 키우지 않을 것이다. 오랜 나의 벗도 떠나면서 말했다. “너의 가슴에서 외치는 소리에 귀 기울일 것” 링거액에 매달리지 않으려면 “가슴 펴! 당당해”그래서 대답했다. “내가 나로서 살아갈게, 누가 뭐라든 날 지킬게” .< 박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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