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타고 세상 여행을 마치고나니 어디가 제일 좋던가요?” 우리가 물었다. 그러자 해군사관학교 생도출신 대표님께서 답변하셨다. “글쎄요. 제 기억으로는 캐나다 밴쿠버의 빅토리아 섬이 제일 아름답게 기억에 남는 장소였어요. 뭐라 할까? 대자연은 스위스, 사람이 만든 위대함은 이탈리아가, 사람들의 미소는 미국이 가장 좋았는데, 그 모든 것을 조금씩 다 가지고 있는 곳이 캐나다였고, 밴쿠버였어요.” 그렇게 야외테이블에 통닭과 맥주를 놓고 세 명의 남자는 저마다 살아온 곳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얼마나 아름다우면 저렇게 이야기 할까? 개인적으로 같은 장소라도 분위기와 시기, 함께 한 사람들에 따라 달라질 텐데 저렇게 자신 있게 말할 만큼 아름다운가?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밴쿠버의 <브리티시 콜롬비아 대학(BCU) 트라이엄프 연구소>에 출장을 갔다. 암 치료를 위한 의료 장비인 ‘사이클로트론’ 개발을 위한 길이었다. 캐나다 사람들은 어떻게 만들어서 치료를 하는지 가서 보고 싶었다. 여정은 험난하기 짝이 없었다. 일본 하네다 공항을 거쳐, 미국 로스엔젤레스(LAX)에 도착, 알래스카 항공으로 환승 후 케나다 벤쿠버 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며칠을 날아온 듯 피곤한 몸을 이끌고 <트라이엄프 연구소>로 향했다. 책임자인 중국계 ‘췐’ 박사를 만나 2박 3일간 꼬치꼬치 묻고 주요 시설들과 장치들을 견학했다. 서로 다시 만나 협업을 위한 토대도 마련하곤 업무는 끝이 났다. 그러고 보니 약 3일 간의 시간이 남는 행운이 따랐다.그 해군생도 출신의 CEO께서 입에 침이 마르게 말씀하던 ‘빅토리아 섬’으로 가기로 했다. 지난 번 칼럼 <호스슈베이의 추억>에서 이미 언급했듯 ‘빅토리아 섬’으로 가는 배를 놓쳐서 ‘깁슨’으로 갔고, 다음 날은 정확하게 빅토리아 섬으로 가서 그곳에서 한국 참전을 <잊히지 않는 전쟁>으로 만들려는 캐나다 인의 노력을 보았다. 가장 좋은 위치에, 그리고 관광객이 제일 많이 찾는 청사 주변에 한 눈에 띄게 전쟁 참전비가 우뚝 서 있었다.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노고에 감사하는 글귀와 함께 참전용사의 이름 한 분, 한 분 적혀있는 것을 보았다. 운전을 하며 내려가다 ‘나나이모’라는 곳에서 다시 전쟁 참전비를 볼 수 있었다. 이 나라 사람들의 자유 수호의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이제 귀국도 이틀 밖에 남지 않았고 해서 그 길로 곧장 미국으로 가기로 했다. 배에 차를 싣고, 국경을 넘어 <포트 엔젤레스>라는 작은 도시로 들어갔다. 미국 출입국 신청서인 I-94는 캐나다 벤쿠버 빅토리아 섬에서 미리 작성하고 입국지인 미국에서 제출했다. 간단한 자동차 트렁크 검사를 마친 후, 몸집이 조금 뚱뚱한 제복차림의 아주머니가 친절하고 따뜻하게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배로 들어온다고 고생 많았다는 격려와 함께 어깨를 툭 쳐주었다. 저렴하고 깨끗한 숙소가 가까운 곳에 있는지 물었고, 친절하게 여행안내 쪽지를 꺼내 체크하며 안내해 주었다. 좋은 여행 되라는 이야기와 함께 캐나다 국경을 배로 건너 미국 땅에 도착한 우리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숙소로 향했다. 국경 검문소 주변에서 멀지 않은 숙소에 짐을 풀고 어두워지는 미국 북서부 워싱턴주(州) 작은 도시를 탐험하기로 했다. 작은 맥주 집(Pub)에 들어가니, 그 옛날 어린 시절 파란 눈의 외국인을 보고 뒤따라 다니던 우리처럼, 이번에는 검은 머리와 검정 눈을 가진 아시아 사람에게 관심을 가진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모두 수줍게 홀 안에 위치한 당구대로 고개를 돌린다. 외국 출장길에 늘 그랬듯, 금빛이 나는 다보탑이 새겨진 10원짜리 동전을 나눠주자 모두들 좋아하며 이방객을 반겼다. 맥주 한 잔씩 건네고 숙소로 돌아와 잠도 오지 않고, 서랍을 이리저리 열어보니 성경책이 한 권 보였다. 그러고 보니, 미국은 어느 지역, 어느 숙소를 가도 서랍에 성경이 놓여있었다.종교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딱히 할 일도 없고 심심한 저녁시간에 <홀리 바이블>이라고 쓰인 성경을 열어보았다. 아마 처음으로 성경을 본 것이리라, 구약성서라고 되어있는 것부터 읽다보니 마치 이야기책을 보는 것 같았다. 이리저리 보다보니 벌써 60쪽을 넘게 보게 되었고, 일행과 호텔 내부를 구경한다고 성경을 다시 제자리에 곱게 넣어두었다. 다음날 아침 체크아웃을 하며 계산하는 도중, 어젯밤에 서랍에 있는 성경을 보았는데, 그것을 사려면 어디에 가야하는지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초로의 여급은 내게 잠깐만 기다리라 하고 어딘가로 사라졌다.오늘 중으로 미국여행을 마치고 급히 캐나다로 돌아와 짐을 싸야하므로 시간이 없었지만 계산이 덜 끝난 건가? 우리는 마냥 20여 분을 기다렸다. 조그만 여행숙소, 남루한 차림의 여급은 헐레벌떡 달려와서는 책을 한 권 내어놓는다. 이것을 가져가셔도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흰머리가 보이는 이마에 굵은 땀방울을 흘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구매할 수 없으므로 자신의 집에서 가져 온 이것을 가져가라고 해서 정중하게 거절했다. 고맙지만 짐이 많아 가져갈 수가 없다고 했다. 계속 성경책을 권했지만 미안해서 받을 수가 없었다. 외면을 보고 평가해선 안 되지만, 어려워 보이던 그 나이 드신 분의 제의를 받을 수 없었다. 그리고는 서둘러 차에 짐을 싣고 급히 워싱턴 주를 떠나 <시애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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