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랫줄처럼 안마당을 가로질러꽃밭 옆에서 세수를 합니다, 할머니는먼저 마른 개밥 그릇에물 한 모금 덜어주고골진 얼굴 뽀득뽀득 닦습니다.수건 대신 치마 걷어 올려마지막으로 눈물 찍어 냅니다이름도 뻔한 꽃들그 세숫물 먹고 이름을 색칠하고자두나무는 떫은맛을 채워갑니다.얼마큼 맑게 살아야내 땟국 물로하늘 가까이 푸른 열매를 매달고땅 위, 꽃그늘을 적실 수 있을까요<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손자 눈에 비친 할머니의 세수하는 모습…손자 눈에는 새롭다. 할머니가 세수를 한다. 씻기 전에 마른 개밥 그릇에 물부터 부어 놓는다. 목이 말라서 물을 찾을 개를 먼저 생각해서이다. 그런 후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을 뽀득뽀득 소리가 날 정도로 마알게 씻는다. 할머니가 얼굴을 닦을 때 수건 대신 치마를 걷어 올려 얼굴을 닦는 것이 손자 눈에는 신기하다. 치마 끝단을 잡아서 마지막으로 눈가에 있는 눈물까지 찍어낸 후 세수한 물을 꽃밭에다 뿌린다. 할머니의 세숫물에는 비방이 들어 있는지 그 물을 들이킨 꽃들은 더 고운 색깔을 내고 더 향기로워진다. 할머니의 세숫물 탓인지 자두도 떫은맛을 단 맛으로 만들어간다. 신비한 힘이다. 할머니의 움직임에는 늘 배려가 숨어 있다. 그것을 바라보고 자란 손자는 할머니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할머니가 살아 온 하루하루가 은혜로 충만해 있다고 믿는 것이다. 할머니의 세월이 사랑으로 가득 차 있을 거라고 상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얼마만큼 맑게 살아야 내 땟국 물로 하늘 가까이 푸른 열매를 매달고 땅 위, 꽃그늘을 적실 수 있을까요’ 라고 했을까. 할머니와 자신을 비교하면서 자신을 성찰해보는 뜻 깊은 시간. 할머니의 자애로운 모습이 떠오른다. 겨울 날 할머니 방으로 들면 내 차디찬 손을 투박한 손으로 부벼주셨지. ‘내 강생이’라며 얼른 아랫목 뜨신 이불 속으로 잡아끌어 당기시던 할머니의 가없는 정(情). 쑥국새의 울음처럼 아득하게 그립다. < 박모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