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들은 굳세게 껴안았는데도 사이가 떴다 뿌리가 바위를 움켜 조이듯 가지들이 허공에 불꽃을 튕기기 때문이다 허공이 가지들의 기합(氣合)보다 더 단단하기 때문이다 껴안는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무른 것으로 강한 것을 전심전력 파고든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무들의 손아귀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졌을 리가 없다 껴안는다는 것은 또 이런 것이다 작은 것이 크고 쓸쓸한 어둠을 정신없이 어루만진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이글거리는 포옹 사이로 한 사나이를 고요히 지나치게 한다는 뜻이다 필경은 한 사나이와 나무와 허공을, 딱따구리와 저녁바람과 솔방울들은 온통 지나가게 한다는 뜻이다 구멍 숭숭 난 숲은 숲字로 섰다 숲의 단단한 골다공증(骨多孔症)을 보라 껴안는다는 것은 이렇게 전부를 통과시켜 주고도 고요히, 나타난다는 뜻이다 <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간격이 있다는 말을 나는 좋아한다. 마라톤을 시작하기 전 선수들은 서로 간격이 있는 출발선 자리에 선다. 동물들도 자신의 영역, 즉 자기들만의 간격이 있다. 배추도 간격이 있어야 하고 사과나무도 간격이 있어야 잘 자란다. 마찬가지로 ‘숲’은 나무와 나무 사이에 간격이 있기 때문에 번성할 수가 있다. 나무와 나무 사이가 너무 촘촘하면 얽혀서 자랄 수가 없다. 나무도 자신만의 영역이 있어야 한다. ‘사이가 떴다’는 것은 빈 곳을 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도 서로의 간격이 있어야 살아 갈 수가 있다. 친할수록 간격을 두라는 말이 있다. 관계가 친밀하면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지 않게 되고 친밀을 핑계로 사생활을 간섭하고 막말을 해 버릴 때가 많다. 그래서 생기는 긁힌 자국들이 세월 속에 상처로 쌓인다. 결국 관계가 영원히 소원해지는 경우 여럿 보았다. 간격이란 ‘예의’이고 ‘지켜주어야 할 선’이며 주의의 당부일 수 있다. 친근하다는 이유로 속속들이 알려고 하고 뭐든 간섭하면 숨통이 조여 오는 느낌을 받는다. 혼자만의 안주하고 싶은 영역마저 침범한다면 그 상대방이 싫어질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그 사람을 피하게 된다. 빈틈이 있고 빈틈을 주는 사람이 좋은 이유는 간격을 주기 때문이다. 편안하게 놓아주고 그 사람의 있어야 할 서로의 영역을 인정해 주기 때문이다. 허공을 만들어 딱따구리와 저녁바람도 지나가게 해야 한다. 그렇게 지나가는 것을 옆의 나무는 무심한 듯 그냥 봐 주면 된다. 가족 간에도, 친구 사이도, 연인사이도 그리고 모든 인간관계는 간격이 있어야 오래 간다. 함께 성장할 수 있다. 인상 깊은 구절이 있다. ‘껴안는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무른 것으로 강한 것을 전심전력으로 파고든다는 것이다’였다. ‘강한 것’보다 ‘무른 것’이 더 힘이 있다는 말일 것이다. 사람들의 단점이나 약점도 이해하고 받아들여주며 통과 시켜주고도 고요히 껴안아주는 포용력이 있는 사람은 얼마나 멋진가 말이다. 그런 간격을 아는 사람이 가장 힘이 있다는 말일 것이다. 다 껴안아주는 숲은 우리들에게 늘 편안한 쉼터를 준다. 숲과 같은 사람이 곁에 있으면 참 행복할 것이다. < 박모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