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633 도로를 따라 5분쯤 내려가자 아까 그 여성 라이더 둘이 내리막길에 속도를 내고 달려가면서 손을 흔들어 인사한다. 내리막길을 신나게 달리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그들의 청춘도 저와 같이 신나는 질주가 되기를 빌어본다.이제 내려가는 일이 남았다. LU-633도로와 헤어져 싱그러운 초목 사이로 난 흙길로 접어든다. 앞서가는 유럽 남자 둘을 추월하며 속도를 높인다. 모처럼 시원한 질주다. 그런 내 옆으로 스윽 지나쳐 가는 순례자가 있다. 키가 나와 거의 비슷한 젊은 여성이다. 귀에는 이어폰을 꽂았다. 거의 워킹 머신이다. 그녀의 엄청난 속도 앞에 내가 너무 소박해져서 맥이 풀려 버릴 지경이다.
얼마나 갔을까. 어느 마을 모퉁이 앞에 한 여성 순례자가 서성이고 있다 나를 보더니 뭐라고 하면서 손짓을 한다. 아까 그 ‘워킹머신’이다. 가까이 다가가자 앞쪽 모퉁이를 가리키며 ‘밴이 문을 열고…,’ 어쩌고 한다. 하얀색 밴 하나가 큰 건물 앞에 뒷문을 활짝 열어 놓은 채 남자들 몇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보인다. 무슨 뜻인지 알겠다. 한국여성이라면 별 생각 없이 지나갔을 법한 상황인데도 유럽여성에게는 위협적으로 여겨지는 모양이었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치안이 좋다는 방증이다.자신과 함께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그녀 옆에서 ‘오케이, 오케이, 잇츠 세이프.’ 안심시켜 주며 한동안 함께 서 있어 준다. 한 사람이 밴에 뭔가를 싣고 뒷문을 닫자 그녀가 안도의 표정을 짓더니 이제 됐다며 가잔다.그녀가 내게 어디서 출발했냐고 묻는다. ‘생장’이라고 까미노 첫 출발지인 프랑스 지명을 말했더니 ‘생장?’ 하고 되묻는다. ‘응, 생장 삐에드뽀흐, 생장’ 또박또박 다시 알려줘도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 이건 한국식 발음이야.’ 하자 그제야 까르르 웃음을 터뜨린다. 그러고는 어제는 어디서 잤냐고 묻는다. 아하, 첫 질문은 나의 첫 출발지가 아니라 오늘 출발지를 묻는 거였구나. 내 대답을 들은 그녀가 며칠째 걷고 있냐? 오늘 몇 킬로미터를 걸었냐? 오늘은 어디로 가냐? 연이어서 질문을 쏟아낸다. 내가 단어만 토막토막 던져주는데도 자꾸 물어대니 멀미가 나려한다.자신은 독일인 슐라라며 내 이름을 묻는다. 나는 한국인 제이슨이라 하자 한국식 이름을 말해 보란다. 어려울텐데? 하면서 한 글자씩 알려주었더니 웬걸? 한국인 수준의 발음으로 내 이름을 왼다. 그러고는 ‘땡큐’를 한국어로 어떻게 하냐고 묻기에 알려주었더니 ‘감사합니다,’ 하는 발음 역시 한국인으로 착각할 만큼 유려하다.중간 마을에서 ‘워킹머신’ 슐라와 헤어지고 지극히 한국적인 산세를 감상하며 트라이카스텔라의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몽골의 게르를 닮은 둥글납작한 알베르게 건물로 들어선다. 리셉션의 친절한 남자 직원이 배낭을 받아들고 방으로 안내한다. 마침 한국인 모자가 먼저 투숙해 있다. 종교적 신념으로 까미노를 걷는단다. 60세가량의 어머니와 30대 중후반의 아들이 함께 걷는 순례길이라…. 아무리 종교적인 신념으로 나섰다지만 부모와 함께 다니기란 말처럼 쉽지 않을텐데 아들이 참 대견하다. 밖으로 나가 한참 헤맨 끝에 현금인출기를 찾아 비상용 유로화를 뽑은 후 가까운 마트로 간다.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 ‘일용할 양식’도 필요하고 양말과 비누도 구입해야 한다. 양말은 물집이 터져 진물에 엉켰다가 말라 구멍이 나 버렸다. 한 켤레는 어디에선가 건조대에 걸어둔 것을 누군가가 걷어가 버렸다. 비누는 배낭 무게를 줄이려 하루만 쓰고 버린다. 어쩌다 샤워부스에 조각비누가 눈에 띄면 그걸 주워 가지고 다녔다. 작은 가게 안을 둘러보다 한국인 여성과 마주쳤다. 순박하고 선한 인상이다. 나와는 다른 알베르게에 묵는단다. 저녁 식재료를 구입하러 왔다며, 빵을 찾는 내게 이것저것 맛있다는 빵을 소개해 준다. 가게를 두어 바퀴 돌며 상품을 들었다 놓았다 반복하고 있으려니 아까 그 모자 순례자 중 아들이 가게로 들어와 여성과 인사를 한다. 대화 내용이 구면인 듯하다.숙소로 돌아와 모자와 가벼운 대화중에 아까 마트에서 만난 여성얘기를 꺼낸다. 남동생과 함께 걷는 남매 순례자라고 한다. ‘길 포식자’ 정 선생이 자주 이야기 하던 바로 그 남매로구나 싶다. 베드로 신부님을 닮았다는 남동생과, 오직 동생의 흡연만 타박할 뿐 어질고 선한 누나가 함께 걷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라던 그 ‘의좋은 남매’가 틀림없어 보인다. 진작 알았으면 인사도 제대로 나누고 정 선생 안부도 전했으련만. 뭐 까미노에서는 언제든지 이별과 만남이 반복되니까 또 만날 수도 있겠지. 저녁거리로 산 빵을 1층 바에서 다 먹었는데도 얼마 가지 않아 슬슬 또 허기가 느껴진다. 내일 아침용 빵과 음료수를 들고 다시 바로 내려간다. 바 테이블에 앉아 모자가 주방에서 조리한 음식으로 저녁 식사 중이다. 나란히 붙은 옆 테이블에 앉아 내일 아침에 먹어야 할 빵과 음료를 미리 당겨 먹는다. 들려오는 모자의 대화가 심상찮다. 어머니는 결혼에는 뜻도 없이 지구촌 곳곳에 발자국을 찍으며 ‘시간을 탕진’하는 아들을 걱정하고, 아들은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게 제발 그 걱정 좀 넣어두라고 볼멘소리다. 경상도 억양의 엄마 목소리에는 행여 아들
의 심기를 건드릴까 조심하는 티가 역력하다. 서울 말씨의 아들은 집에서도 듣던 엄마의 K-잔소리에 짜증을 감추지 못 한다. 서로에게 한 발도 다가서지 못한 채 공회전만 거듭하던 모자는 결국 내게 중재를 요청한다. 어설픈 중재는 확전의 불씨가 될 수 있다. 이럴 때는 오직 등거리 외교만이 중재자의 안위를 지키는 길이다,문제는 이런 게 내게는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라는 점이다. 등거리 외교의 기본은 ‘속마음 따로 말 따로’인데 언제나 말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음을 따라 가버린다. 난치병, 고질병을 넘어서 이젠 지병이다.어느새 청년의 어머니를 설득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지금 청년세대는 한 번 뿐인 자신의 삶을 어떻게 하면 보다 더 의미 있게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자신에게 투자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한다. 부모가 자신들을 희생해서 이룬 것을 바탕으로 더 나은 가치를 위해 살아 보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부모세대의 삶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은혜와 감사를 바탕에 깔고 한 차원 더 높은 것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자식이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란다면 내가 다져놓은 터를 딛고 더 나은 곳으로 올라가 보라는 격려가 필요하지 않을까. 세상 여러 곳에서 체험한 모든 것들이 아드님의 삶을 행복하게 해 주는 동력이 된다고 믿고 그 과정을 지켜보고 지지해 주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아드님은 분명 여행길에서 자신의 인생길을 찾고 있을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자신이 살아보고 싶은 대로 살아볼 권리가 있는데 우리세대는 그냥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 대로만 살았다. 다음 세대는 좀 다르게 살아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내가 미처 살아보지 못한 방식대로.밖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알베르게 입구 앞 무성한 버드나무 가지를 타고 빗방울이 미끄럼을 타고 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