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레스토랑에 <돈데보이>가 울려 퍼진다. 나는 지금 나만을 위한 콘서트 장에 앉아 있다. 감미로운 듯 애조 띤 선율이 목젖을 아리게 한다. 기분 좋은 비극미가 온몸을 감싸고 돈다. 삼계화택(三界火宅)을 벗어난 노지(露地)나 선계(仙界)에 앉아 있는 기분마저 든다. 세상의 종말이 온다 해도 이대로 있고 싶다.대여섯 번을 반복해 듣는 동안 홀을 오가는 호스트는 통 노래에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모르는 노래라도 스페인어로 부르는 노래인 만큼 관심을 보일만도한데 태무심이다. 단 한 번도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고뇌하고 방황해 본 적 없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것이 축복인지 불행인지는 차치하고.아무래도 삶은 감자와 <돈데보이> 조합은 좀 그렇다. 이름 모를 붉은 음료 한 잔을 주문해 홀짝 거리며 한껏 이국에서의 ‘나그네 설움’을 만끽해 본다.노래에 배어 있는 슬픔과 비애의 정조가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기분 좋게 퍼져나간다. 어떻게 비극적인 감정과 쾌감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지, 이 나른한 디오니소스적 희열은 어디에서 오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저 예술의 힘, 카타르시스의 힘이겠거니 할 따름이다. 10여년을 지옥도(地獄圖)의 중심에 있던 나는 결국 자의반 타의반 그 집단을 떠났다. 이대로 살 수도 없고, 이대로 살지 않을 수도 없는 잔인한 딜레마에 빠져 허우적댄 지 10년만이었고, 집단에 몸담은 지 만 24년 만의 일이었다. 그곳은 <적과 흑>의 도시 ‘베르에르’였다. 속물적인 권력자와, 권력을 추구하는 위선과 가식에 찬 성직자들의 천국 ‘베르에르’.‘천국의 문’을 나서는 내 손에는 달랑 책 몇 권만이 들려있었다. 꼭 5년 전의 일이다. 노래가사처럼 어디로 가야할지, 어디서 희망을 찾아야 할지 헤아릴 수 없었다. 영광은 없고 상처와 고통만 남은 쓰라린 중도하차였다.필생의 도반과도 메별의 아픔을 나누어야 했다. 나의 허물 탓이 8할이었고 지옥생활이 끼얹은 기름 탓이 2할이었다. 거대한 화마는 모든 것을 집어삼켜버렸다. 한들한들 언제나 주변을 환하게 물들이던 ‘코스모스’는 다시는 한들거리지 않았다……. 그리고 암전(暗轉).속인이 된 나는 1년의 공백기를 가졌다. 운명의 주먹을 맞아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고 해야겠다. 여기서 끝나는 것은 나와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지만 언뜻언뜻 그만 여기서 게임이 끝나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비집고 들었다. 이기고 지는 게 다 무슨 소용인가. 더구나 상대는 ‘운명’ 아닌가. 일어서서 출구를 찾아 봐야 한다는 생각과 그만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갈마들 때 가끔은 이 노래를 들었다. 그때마다 예술의 위대함을 실감했다. ‘슬픈’ 사람이 ‘슬픈’ 음악이나 연극을 감상하면 두 ‘슬픔’은 사라지고 사람과 음악(연극)만 남는다. 이때 슬픔은 어디로 가는 걸까. 슬픔에 젖은 사람이 슬픈 음악을 들었는데 슬픔은 어디로 가고 왜 개운함과 후련함이 찾아오는 걸까. 예술이란, 카타르시스란 슬픔마저 힘이 되게 하는구나. 산다는 것은 슬픔을 딛고, 고통을 딛고 앞으로 한 발을 내미는 것이구나.베이스캠프를 차리고 일자진(一字陣)을 쳤다. 상대가 운명이라서 더 패배할 수 없었다. 캠프는 남루했고 일자진은 초라했으나 나에게는 ‘아직도 가야할 먼 길‘’이 있었다.영화 <록키>에서 록키 발보아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강한 펀치를 날리는 건 중요하지 않아. 끝없이 얻어맞으면서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게 중요해. 승리는 그렇게 얻는 거야!”나는 운명의 펀치를 맞아 자주 쓰러졌다. 그러나 나는 매번 다시 일어섰고, 이번에도 다시 일어섰다. 또 다시 무수한 펀치를 허용하겠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언젠가 운명이 내게 질려 흰 타올을 던지는 순간이 올 때까지.지옥의 화마가 남긴 잿더미를 걷어내고 하나씩 벽돌을 쌓으며 ‘리빌딩’을 시작했다. 예전 건물과는 확연히 다른 형태, 다른 구조의 건축물을 짓고 싶었다. 한 번 가 본 길 보다는 가보지 못한 길을 더 좋아 하고, 진부함을 죄악시 하는 나에게 새로운 건축물을 쌓아 올리는 일은 ‘즐거운 놀이’였다.어린 시절 책상 앞 벽에 E.헤밍웨이의 브로마이드 얼굴 사진을 붙여 놓은 적이 있었다. 단순히 헤밍웨이의 흰 수염과 강인한 얼굴이 멋져 보였기 때문이었다. 거기에는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어린 나로서는 알 듯 모를 듯한 그 문장에 시선이 갈 때마다 이상한 감동이 일었다. 그때마다 수시로 의미를 생각해 보았던 그 문장은 내 무의식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으면서 매번 나를 일으켜 세워 주는 주문(呪文) 같은 것이 되었다.‘인간을 파괴할 수는 있어도 패배시킬 수는 없다.’ 운명이 나를 파괴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를 굴복시키고 패배시키지는 못한다. 파괴는 운명의 몫이지만 굴복과 패배는 나의 몫인데 나의 사전에는 그 두 단어가 없다. 두려운 것은 저간에 겪었던 고난과 고통이 아무런 가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럴 일은 없다. 나의 ‘빌드 업’은 그것들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돈데보이>가 울려 퍼지는 텅 빈 홀이 내게는 디오니소스 원형 극장이다. 여섯 가닥 기타 줄과 네 가닥 바이올린 현이 서로 밀었다가 당겼다가 한 몸으로 어우러졌다가 다시 멀어질 듯 다가서며 이어지는 탄주가 나그네의 심금을 흔들어 댄다.이날의 감자만찬은 까미노 첫날 피레네 산맥을 넘다 오리손 산장 야외식탁에서 즐긴 ‘구름 위의 식사’ 못지않은 최고의 식사였다. 레스토랑을 나와 숙소 건물로 간다. 저 아래쪽에서 두 순례자가 이쪽으로 오고 있다. 나는 일찌감치 일과를 마치고 빈둥거리다 잠들 일만 남았는데 7시가 넘은 지금까지 걷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공연히 마음이 쓰인다. 그런데 가만, 저 얼굴은? 다시 보니 그저께 폰세바돈 알베르게에서 저녁 먹을 때 보았던 그 말없던 청년이다. 그 새 수염이 많이 자랐다. 옆에 있는 길벗은 아예 수염이 두 볼을 다 뒤덮었다. 내가 반가움에 ‘헤이. 프렌드!’ 하며 손을 흔들자 청년이 환호성과 함께 손을 흔들며 다가온다. 나와 청년이 번갈아 가며 자기 카메라로 ‘기념샷’을 남긴다. 청년이 내 이름을 묻는다. 내가 한국이름을 알려주자 자신은 차미란다. 길벗은 라지. 둘 다 미국인이란다. 원래 동행이냐고 묻자 오다 만났단다. 미국인 친구를 만나서 좋겠다고 하자 정말 좋다며 활짝 웃는다. 까미노에 미국인은 잘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수줍음 많은 차미가 미국인 길벗을 만났다니 내가 다 기쁘다. 친구가 생긴 덕분인지 폰세바돈 알베르게에서와는 달리 차미의 얼굴엔 생기가 넘친다.사람들도 별로 없고 아주 좋다며 여기서 자고 가라고 하자 예약한 곳이 있어서 가야한단다. 작별인사를 남기고 차미와 라지가 다음 마을을 향해 점점 멀어져간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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