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난 것’ ‘부정적’인 것에 대한 터부는 매우 파쇼적이다. 권력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게 이런 것이다. 비판의식 없이 남들의 말만 되풀이하는 사람들은 권력자의 노리개가 되거나 백치로 살아가게 된다. 세상의 단순무지한 자들이여, 부디 저런 저급한 말에 딸려가지 마라. 다시는 ‘물병에 물이 반 남았을 때 부정적인 사람은….’ 따위의 진부하고 멍청한 소리를 늘어놓지 마라. 부정적인 사람은 반만 남은 물을 아끼고, 미리 대책을 세우지만 당신들이 신봉해마지않는 긍정적인 사람은 끝까지 ‘저에게는 아직도 한 방울의 물이 남아 있습니다!’하고 누워있을 것이다. 다시는 자신과 다른 사람을 ‘별나다’고 폄하하지 마라. 별나지 않으면 기껏해야 당신과 똑같은 수준 밖에 더 되겠는가. 당신들이 꼭 기억해야 할 말은 멍청한 말은 5천 만 명이 5천년 동안 떠들어대도 여전히 멍청한 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진짜 문제는 인류의 문명사적 진보와 생물학적 진화의 배경에는 언제나 현상태에 대한 부정이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당신들의 매끈한 대뇌피질이다. 그래도 ‘별난 것’, ‘부정적’인 것이 싫다면 4족보행하는 침팬지로 다시 돌아가라. 긍정은 친구의 털을 헤집고 찾은 ‘이’나 먹으면서 실컷 하시라. 당신들은 긍정을 좋아하니까 내 말도 긍정적으로 검토하리라고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한다.세상의 부정적인 사람들이여, 당신들을 ‘부정적’이라며 매도하는 ‘4족보행 회귀론자’들보다 당신들이 훨씬 위대한 존재들임을 잊지 마시라. 자부심을 가져라. 부정하고, 부정하고, 또 부정하는 ‘별난 사람’이 되어라. 그리하여 또 다른 진보의 한 걸음을 내디뎌라.조에족의 ‘별나게 다른’ 문화와 관습은 나와 다른 대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뜨거운 화두를 던져준다. 이른바 문명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이 조에족을 ‘미개하다’고 비난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그러한 시각이야말로 반문명적이며 미개하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현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을 ‘왜 부정적으로 보냐’고 비난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그러한 시각이야말로 부정적이며 폭력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가 미개한 것이며 누가 부정적인 것인가.다시 한 번 세상만사는 ‘꼭 그래야 한다는 법도, 꼭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법도 없다(無可無不可)는 <논어> 구절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고 보니 공자도 꽉 막힌 ‘기준’만 고집한 사람은 아닌 셈이다.저녁을 먹으러 알베르게에 딸린 레스토랑으로 간다. 레스토랑은 50여 미터 정도 뚝 떨어진 곳에 있다. 도로에서 좀 들어간 곳에 넓은 마당을 안고 초라한 행색으로 서 있다. 덩치는 숙소건물보다 서너 배 이상 큰 2층 건물인데 많이 낡았다. 아마 예전에 숙소로 사용하다 지금의 숙소건물을 짓고, 기존 숙소를 레스토랑으로 개조한 것으로 짐작됐다.밖에서 볼 때 보다 내부는 깔끔하다. 입구 왼쪽에 길게 바가 설치돼 있고 벽에는 다양한 주류와 음료들이 사열하는 의장대처럼 차렷 자세로 손님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음식점은 붐벼야 제 맛인데 커다란 홀은 텅 비어 있다. 헤밍웨이처럼 흰 수염과 짧은 백발을 한 중년의 호스트가 바에서 일을 하다 반긴다. 사람좋은 미소와 함께 손가락으로 케이하트를 날려주는 센스까지 갖췄다. 이곳에 한국 순례자들이 꽤 다녀갔다는 방증이다. 휴대전화로 한국인들과 찍은 사진이 즐비한 홍보용 페이스 북을 보여준다. 댓글도 많이 달렸다.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노력이 인상적이다. 다녀간 고객들과의 소통 못지않게 새 고객 유치도 중요한데 그게 아쉽다. 내가 텅 빈 홀을 가리키며 안타까워해도 그는 괜찮다고 웃기만 한다. 숙소 예약 앱에 충분한 정보가 올라가 있지 않아서일까, 이 집을 예약했던 앱을 찾아 들어가 보니 아, 글쎄 와이파이가 된다는 정보를 빼놓았다. 그럼 그렇지, 나야 별 생각 없이 예약했지만 요즘은 기본 중의 기본인 와이파이가 없는 곳에 누가 올까. 내가 ‘글로벌 오지라퍼’답게 ‘여기 와이파이가 된다는 내용이 없다.’며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듯 앱을 보여준다. 그가 ‘정말 그러네.’ 하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 여행자 숙소예약 앱에 와이파이 정보가 빠졌다고 알려준다. 이제 내일부터 이 집 문지방에 불이 날 것이다…. 라고 기대해 본다.                                                    저녁메뉴 중에 먹을 만 한 게 없다. 투숙객이 이렇게 없으니 다양한 음식 재료를 갖춰 놓았을 리가 없다. 하릴없이 삶은 감자를 주문한다. 호스트가 주방에 음식주문을 하고 온다. 그나마 ‘주방이모’가 ‘월차휴가’ 중이 아니라서 다행이다.내가 바늘과 실을 좀 갖다 줄 수 있냐고 묻는다. 샤워하며 본 발바닥에는 아물어 가는 물집 옆에 또 다른 물집들이 잡혀있었다. 어제 보고도 작다고 그냥 무시해 버린 것이 화근이었다. 토레스 델 리오에서 로그로뇨로 갈 때도 전날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물집 때문에 그 고생을 하고도 똑같은 우를 범하고 말았다.먼 길에는 신발이 편해야 한다는 생각에 ‘좋은’ 신발을 신은 게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 순례길 800킬로미터와 유럽 13개국을 다 훑고 다닌 후에야 볼이 좁은 신발 탓이었음을 알고 땅을 쳤으니 나도 참 어지간히 미련하다 싶다. 발만 성했어도 훨씬 완성도 높은 순례길, 여행길이 되었을 것을. 여행길이든, 인생길이든 가장 기본적인 게 말썽을 부리면 전체가 흔들려버린다. 물론 그 흔들림의 고난과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이야말로 그 길을 더욱 가치 있게 해 주고, 그를 더욱 성장시켜 주는 것만은 분명하다. 중생의 삶이 어차피 못 먹어도 고(苦). 잘 먹어도 고라면 그 고를 통해서 무엇인가를 얻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불행이란 자신이 겪은 고통에서 아무 것도 얻어내지 못 한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한껏 부풀어 있는 물집에 호스트가 금방 가져다 준 실을 연결해 ‘배수로’를 설치해 주고, 저녁으로 나온 삶은 감자에 소스를 끼얹어 먹는다. 한적한 알베르게, 한산한 레스토랑, 호스트마저 자리를 비운 텅 빈 바, 소스를 덮어쓴 감자, 그리고 포크로 감자를 찍어 먹는 늙수그레한 중 하나…….그림은 기묘하고 감자 맛은 오묘하다. 이럴 때 음악이라도 한 곡 흘러나오면 절묘할텐데…. 휴대전화기를 뒤져 저장해 둔 노래 한 곡을 찾는다. 이런 분위기라면 이 노래가 제격이다.‘(전략)/어디로 가야 하나요, 난 어디로 가야하나요/희망이 나의 목적지예요/나 홀로, 나 홀로 외로이/사막을 떠도는 도망자처럼 난 가고 있어요.’멕시코 계 미국인 티시 이노호사가 스페인어로 부른 <돈데보이(어디로 가야 하나)>다. 죽음을 무릅쓰고 미국 국경을 넘은 멕시코인들이 불법체류자가 되어 쫓기며 살아가는 애환을 그린 노래다. 애절한 가사와 애조 띤 멜로디가 잘 어우러진 명곡이다. 특히 후렴구 ‘어디로 가야 하나요, 난 어디로 가야하나요/희망만이 나의 목적지예요/나 홀로, 나 홀로 외로이’ 대목은 호소력 짙은 가수의 음색이 더해져 나도 몰래 따라 부르게 하는 중독성까지 있다.‘돈데보이, 돈데보이. 에스뻬란싸 에쓰 미 데스띠나시온. 솔로 에스또이. 솔로 에스또이. 뽀르 엘 몬떼 뿌로푸고 메 보이(어디로 가야 하나요, 난 어디로 가야하나요. 희망만이 나의 목적지예요. 나 홀로, 나 홀로 외로이 사막을 떠도는 도망자처럼 나는 가고 있어요)’(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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