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의 의도와 행동은 혐오하지만 그를 미워하지는 않는다. 그저 그의 위선과 가식은 하늘의 이치를 다했고 오묘한 교언영색은 땅의 이치를 깨우쳤으니 부디 명주 고름 같은 말로 타인을 현혹한 후 상처 입히는 일은 이제 그만 두기를, 나를 끝으로 더 이상 그의 천부적인 야비다리치기에 당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오히려 나는 그가 고맙다. 만약 그가 정말 나를 이끌어 올려 주었더라면 결과적으로 나는 거기서 자신을 버리고 ‘비전향 장기수’의 삶을 마감해야 했을 것이다. 이후로는 안수정등(岸樹井藤)의 나그네 같은 한심한 여생을 살다 가는 최악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나를 버리고 ‘면죄부’를 받았더라면 나는 모든 것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신학자이자 사상가 에크하르트는 ‘비록 왕국을 버려도 자신을 버리지 않으면 아무 것도 버리지 않은 것이지만, 자신을 버린 사람은 그 무엇을 지켜도 모든 것을 버린 것’이라 했다. 다행히 나는 모든 것을 잃었지만 나를 버리지는 않았다. 그 덕에 ‘베수비오 화산의 비탈’과 근접한 곳에서 순간순간 나를 깨어있게 하는 삶을 살고 있다. 안수정등의 끔찍한 삶을 끝낸 것만으로도 나는 절반의 해탈은 이룬 셈이다.마지막까지 ‘잉간’에 대한 환멸감을 안겨줌과 동시에 결과적으로 내게 새로운 길을 열어준 그는 지금 어디 있을까. 그가 ‘십진필’의 주구이자 ‘5비 잉간’으로서, 그 집단의 풍토를 오염시킨 공범으로서 침단(針端)의 부끄러움이라도 보여준다면 기꺼이 나는 한 가닥 혐오감마저 폐기처분 할 수 있다.비야프랑카를 벗어나 포장도로를 따라 산을 넘어간다. 차도와 인도 사이에 허리춤까지 오는 콘크리트 펜스를 쳐 놓아 편안하게 걷는다. 요즘 다른 순례자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길 왼쪽 계곡으로 풍부한 수량의 맑은 개울이 흐르고 있어 적적하지 않다. 그 작은 마을이 아마 뻬레헤였을 것이다. 2시쯤 바에 들러 대구스테이크를 주문한다. 감자와 완두콩, 당근을 넣은 붉은 스프가 먼저 나온다. 얼추 얼큰한 감자찌개다. 입맛이 돈다. 아헤스의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그 스프다. 레스토랑 바깥주인 안토니오는 여전히 아내의 호통에 쩔쩔매며 홀을 누비고 있을까. ‘고국의 맛’을 기대한 스프는 너무 짜다. 스테이크와 함께 먹으니 먹을 만하다.모처럼 점심을 배불리 먹은 힘으로 남은 10여 킬로미터를 걸었다. 아스팔트길이긴 해도 구름도 많고, 숲도 울창해 걷기에 나쁜 조건은 아니건만 오늘도 힘든 것은 순전히 물집 잡힌 발 탓이다.베가 데 발카르세 초입에 예약한 엘 로블 알베르게가 홀로 서서 순례자를 기다리고 있다. 멀리까지 마중 나온 가족처럼 일찍 나타나 준 알베르게가 고맙다. 어제 전철을 밟지 않으려 예약 해 두길 잘했다. 지금 상태로는 한로가 쫓아온대도 더는 못가겠다.도로에 바짝 붙어선 알베르게는 단층건물에 리셉션과 8인실 방 두 개가 전부다. 방에다 배낭을 내려놓고 나니 5시가 가까워 온다. 방안에는 2층 침대 4개가 놓여 있다. 투숙객은 나 하나. 옆방에도 젊은 여성 순례자 하나만 투숙해 있다. 한산해서 좋기는 한데 이렇게 해서 어떻게 먹고 사는지 또다시 나의 글로벌한 오지랖이 작동한다.샤워장 가는 복도 벽에 아마존 소수부족 조에족의 얼굴상이 소품으로 걸려 있다. 조에족은 아래턱에 20센티미터 가량의 ‘뽀뚜루’라고 하는 나무토막을 꽂고 있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이들은 지구상 유일하게 다부다처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다자간 사랑(폴리아모리)의 대표 격이라고 할까. 뽀뚜루는 피어싱의 원조라 할 만 하고.우리의 시선에 이런 조에족의 문화는 이해불가다. 그러나 모든 문화는 존중받아야 하고 그 자체로 의미와 가치를 가진다. 남편과 아내를 공유하고, 아직 어린 아이에게 마취도 없이 뽀뚜루를 ‘장착’시키는 이 부족을 비난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부부싸움을 하거나 뽀뚜루를 거부하는 아이는 거의 0으로 수렴한다고 하니 전통과 문화, 관습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난다. 조에족의 이 같은 문화는 죄니 선악이라고 하는 것도 그 시대, 그 지역 사람들 간의 잠정적 합의일 뿐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음을 말해 주는 듯하다. 모든 시시비비의 근원은 ‘기준’ 탓이다. 기준을 정하는 순간 ‘다른 것’은 ‘잘못된 것’이 되고 만다.노자가 공자를 비판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노자는 공자가 ‘쓸데없이’ 인(仁)이니 예(禮)니 하는 ‘기준’을 정해 놓음으로써 ‘기준’에 맞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것’ ‘틀린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보았다. ‘효자’의 기준을 만드는 순간 ‘불효자’가 생겨나 버리는 것이다. 공자의 경직된 생각에 비해 분명 노자의 유연성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노자의 손을 들어주기도 꺼림칙하다. ‘기준을 정하면 안 된다’는 것도 또 다른 ‘기준’이 아닌가. 노자가 공자를 비판하는 것 또한 자신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 아닌가. 노자가 애초에 자기 기준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 공자를 향해 ‘쓸데없는 기준‘ 운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내가 한동안 ‘십진필’을 위시한 ‘두억시니떼’를 비난하자 ‘별나다.’ ‘너무 부정적이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자신과 다른 사람을 별나다고 한다면 내게는 당신이 별난 사람이다.’ ‘나를 부정적으로 보는 그 시각이 부정적’이라고 나는 되받아 주었다. 만약 그들이 ‘긍정적’이라면 나의 비판과 비난도 이해했을 것이다. ‘두억시니떼’는 긍정하면서도 그들을 문제 삼는 나를 부정적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질식할 것 같았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런 비난들이 얼마나 모순적인지 알 수 있을 텐데 그들은 대뇌피질에 다림질을 해서 주름을 없애버린 걸까. 세상이 조금씩 진보한 것은 현상태를 ‘부정’한 ‘별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실을 긍정만 하고 앉아 있었다면 인류는 아직도 4족보행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무를 타다 피곤하면 그늘에 누운 친구의 털을 헤집고 ‘이’나 잡아 먹어가면서. 개인의 발전도 불완전한 현상태를 부정하고 현실을 변화와 극복의 대상으로 여길 때 가능하다. 싯다르타는 당시 인도사회도, 자신의 삶도 부정적으로 보았다. 싯다르타가 현실을 긍정적으로만 바라보았다면 출가도, 고행도, 깨달음도 없었고, 불교라는 종교도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불경에는 유독 무(無), 불(不), 비(非) 등 부정적인 단어들이 많다. 진리는 하나하나 부정해 가면서 찾아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싯다르타는 ‘별나고’ ‘부정적’이었기에 붓다가 될 수 있었다. 깨달음은 ‘별난’ 사람의 치열한 ‘부정’의 산물이다. 석가도, 예수도, 소크라테스도 ‘별난 사람’들이었다. 별나지 않은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런 공헌을 한 게 없는 사람들이다. 누군가를 ‘별난 사람’이라고 규정하는 순간 그는 ‘별 나지 않은 사람’ ‘별 볼일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세상의 진보에 아무런 이바지도 하지 않은 채 숟가락만 얹은.‘긍정적’인 그들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와 아테네 암굴감옥에서 죽은 소크라테스를 향해 ‘별난 사람들이 세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본 대가’라고 말할 건가. 그렇다면 자신들이 나중 늙어 죽게 되는 것은 ‘별 볼일 없는 사람이 죽음을 긍정적으로 본 대가’를 치르는 것인가.저 방법적 회의론자인 근대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의 ‘cogito, ergo sum(의심한다, 고로 존재한다)’에서 코기토(cogito)는 통상 ‘생각하다’로 번역되지만 의미상으로는 ‘의심하다’에 더 가깝다.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의심하는 생각’이다. 즉 부정적인 개념이다. 부정하고 의심할 때부터 인간이 비로소 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기존의 질서를 의심하지 않는 사람은 ‘존재’ 자체가 의심스럽다. 나는 의심하지 않는 자를 의심한다. 나는 부정하지 않는 자를 부정한다. 나는 자신과 다른 사람을 ‘별난 사람’이라고 비난하는 별나지 않은 사람들을 단호히 부정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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