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매일신문=전차진기자]칠곡군의 80대 할머니들과 제주의 10대 천재 동화작가가 마련한 특별한 전시회가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세대를 뛰어넘어 따뜻한 위로와 사랑을 전하기 위한‘전이수×칠곡할매글꼴 특별기획전’은 지난 16일부터 내달 16일까지 제주시 조천읍 ‘걸어가는 늑대들’ 갤러리에서 ‘괜찮아’라는 주제로 열린다.기획전은 16일 열린 개막식을 시작으로 한 달간 전 작가 작품 40여 점을 칠곡할매글꼴로 설명한 캔버스가 나란히 내걸리고 칠곡 할머니들의 인생과 삶, 애환이 녹아있는 시집과 시화 10점을 선보인다.칠곡할매글꼴은 일제강점기와 가난으로 일흔이 넘어 한글을 깨친 다섯 명의 칠곡 할머니가 수없이 연습한 끝에 제작한 글씨체(5종)로 윤석열 대통령이 보낸 연하장에 쓰일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올해 15세인 전 작가는 2018년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최연소 동화작가로 소개됐으며 동화책 및 에세이집 11권을 출간했다.개막식은 오영훈 제주지사와 김재욱 칠곡군수를 비롯해 칠곡할매글꼴 주인공 이원순·김영분 할머니와 전 작가 등 100여 명이 함께했다.개막식을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하자 조회수가 1만 회를 기록할 만큼 높은 관심을 보였다.칠곡 할머니들은 손자뻘 되는 전 작가를 위해 직접 재배한 농산물로 나물밥을 해주며 정을 나누기도 했다.전 작가는 동생 우태 군과 대형 캔버스에 칠곡 할머니의 젊은 시절과 현재의 모습을 그리며 굴곡진 삶을 살아온 칠곡 할머니를 위로했다.전 작가는 “할머니들의 깊은 삶의 흔적이 배어있는 칠곡할매글꼴과 제 그림을 함께 전시할 수 있게 돼 매우 뜻깊다”며 “할머니들의 숨결이 이곳 제주에서도 많은 사람의 가슴에 따뜻한 온기로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오영훈 지사와 김재욱 군수는 낙동강 물과 제주도 바닷물을 도자기에 담아 합치는 세리머니를 펼치며 소통과 화합의 메시지를 전했다.오 지사는 “특별기획전을 통해 10대와 80대가 세대를 넘어 우리가 꿈꾸는 사회의 미래를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며 “칠곡과 제주의 시민들이 더 행복해지는 특별한 인연을 계속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김 군수는 “그림과 글 작품들이 강렬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조화로운 청정 제주의 자연을 닮아서인 것 같다”며 “문체부 법정 문화도시 선정과 칠곡할매글꼴 등의 문화콘텐츠를 또 하나의 성장 동력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이 밖에 이철우 경북도지사, 정희용 국회의원, 최홍식 (사)세종대왕기념사회업회대표를 비롯해 장고의 신 박서진 등의 많은 연예인이 동영상 축사를 보내며 특별기획전을 응원했다.갤러리 관계자는 작품을 할머니 글씨체로 설명해서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며 “할머니 시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시는 분들도 많다”고 전했다.한편 칠곡군은 가정의 달인 5월을 맞아 문화체육관광부 법정 문화도시 사업의 하나로 지역에서 특별기획전 개최를 검토하고 있다.◆칠곡할매글꼴 할머니가 전하는 위로칠곡할매글꼴 할머니들이 어린이 동화작가 전이수와의 `괜찮아` 특별기획전과 관련해 힘들어하는 국민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사랑의 메시지를 내놓아 관심이 모아진다.추유을 할머니는 "공부를 좀 못해도 괜찮더라"라는 메시지를 내고, "공부가 다 아니더라. 나는 4남매를 키웠는데, 그중에 공부하려는 애는 많이 시켰고, 하기 싫어하는 애는 적게 시켰다. 공부 적게 한 아이가 가까이 있으면서 더 자주 오가고, 효도한다. 공부가 다 아니고 성격이 좋아야 한다"고 강조했다.이원순 할머니는 "돈이 없어도 괜찮더라"고 했다. 할머니는 동네에 돈이 있는 사람도 못쓰고 결국 가드라면서, 잘 먹고 마음 좋게 살다가 가는 게 좋다면서 할머니와 같은 세대들이 공감할 수 있는 삶의 지혜를 내놓았다이종희 할머니는 "시간이 지나니 어려운 일도 다 괜찮더라"며, "힘든 일도 괴로운 일도 시간 지나니 추억 같고, 눈감고 생각해보니 세월이 보약이더라"는 삶의 지혜를 던졌다. 김영분 할머니는 "혼자라도 괜찮아. 동네 할매 할배들이랑 10원짜리 화투도 치고. 음식도 맛있는 것 먹고 하니 괜찮다"면서, "너희는 나보다 젊으니까 낫잖아. 그러니까 걱정하기 보단 노력하고, 버티면서 살아보자. 내가 옆에서 도와줄께"라면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한편 할머니들의 연륜과 삶의 지혜가 담긴 메시지는 복잡다단한 현대를 사는 할머니와 같은 세대와 젊은 세대에 큰 울림으로 다가가면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각고 노력의 산물 칠곡할매글꼴할매글꼴은 일제강점기와 가난으로 한글교육을 받지 못한 마지막 세대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성인문해교육의 성과를 점검하고, 한글 문화유산으로 기록하기 위해 만들어졌다.칠곡군은 2019년 9월 글꼴 제작을 위해 성인문해교육을 받는 400여 할머니 글씨체 가운데 개성 있는 다섯 분의 글씨체를 선정했다. 선정된 할머니들은 자신의 글씨체가 디지털화되어 영구 보존된다는 소식에 마지막 유언을 남기듯 온 힘을 다해 글씨 연습을 했다.할머니들에게 글꼴 제작은 힘겨웠다. 4개월여 동안 1인당 2천여 장 종이를 글씨체로 빼곡히 채웠다. 획의 굵기를 일정하게 하려 네임펜을 사용했는데 한명당 7~8개를 쓸 정도로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영어 알파벳과 특수문자는 그림 그리듯 글자를 그려냈다. 가족들은 강사로 나서며 응원했다.2019년 12월 마침내 할매글꼴은 한글과 영문 폰트로 칠곡군 홈페이지를 통해 정식으로 배포됐다. 폰트는 글씨체 원작자의 이름을 따 칠곡할매 권안자체, 이원순체, 추유을체, 김영분체, 이종희체로 이름 붙여졌다.할머니들은 코로나 상황에도 값진 문화유산을 만들어냈고, 문화 수혜자에서 공급자로 우뚝섰다. 할매글꼴이 공개되자 "폰트를 보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작년에 돌아가신 어머님 생각이 난다"는 등의 극찬이 쏟아졌다.연간 100만명에 이르는 관광객이 찾는 경주 황리단길 입구에는 권안자체로 `지금 너의 모습을 가장 좋아해`라고 쓴 5mⅹ10m 대형 글판이 내걸려 있다. 글판 앞은 사진촬영 명소로 유명하다. 수원 해병대 사령부와 포항시 오천읍 해병대 교육훈련단은 `해병대 입대를 환영합니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란 현수막을 걸었는데, 할매글꼴이 장병들에게 고향의 정을 느끼게 해준다는 것이 이유다.충북 충주시 우리한글박물관은 할매글꼴로 제작한 표구를 상설 전시하고, 박물관을 찾는 관람객에게 공개하고 있다. 또 할매글꼴에 담긴 숨은 이야기와 제작 과정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안내 책자를 비치하고 별도의 기획전을 개최했다.국립한글박물관은 정규 한글교육을 받지 못한 마지막 세대가 남긴 문화유산으로 한글이 걸어온 역사에 발자취를 남기고 새 역사를 쓴 것으로 평가해 할매글꼴을 USB에 담아 유물로 영구 보존하기로 했다.할매글꼴 주인공들은 지난 1월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윤 대통령, 김건희 여사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할머니들의 사연을 들은 대통령실 초청으로 이뤄진 만남이었다. 이 자리서 대통령은 할머니들이 작성한 `대통령에게 전하는 희망 메시지`에 서명했고 대통령 기록물로 영구 보전했다.김재욱 칠곡군수는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칠곡할매 문화관’ 건립에 따른 지원을 약속받았다.이철우 경북도지사는 학교에 다니지 못한 할머니들을 위해 40여 년 만에 교사로 돌아와 수업을 진행하고 명예졸업장을 전달했다. 김 군수는 “카카오톡 이모티콘과 농산물 포장지, 할매벽화 그림 등에 칠곡할매글꼴을 적극 활용할 것”이라며 “칠곡할매문화관을 건립해 칠곡할매글꼴이 칠곡을 상징하는 문화콘텐츠가 되도록 육성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