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창고녕가야 역사회복운동은 상주문경의 발전과 위상을 높이는 100조 프로젝트라고 필자는 말하고 싶다. 곷감팔고 명주팔고 쌀을 팔아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거대한 사업이 함창고녕가야 역사회복운동이다. 현재 상주시의 도시규모나 위상은 대한민국 전체로 볼 때 50대 도시 안에 들어가지 못한다. 역사이래 상주·문경은 조선조 말까지 전국에서 8대 도시 밖으로 밀려난 적이 없음을 상기한다면 현재의 위상이 얼마나 축소 됐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신라에서는 서라벌과 더불어 양대세력을 형성했었고 고려시대 이후에도 경주와 더불어 영남의 양대세력으로 천년의 역사를 유지해왔다. 조선시대에도 상주는 경상도를 관할하는 경상감사가 200여 년이나 유지됐다. 당시만 해도 영남제일의 도시로서 전국에서 한양, 평양, 개성에 이어 4대 도시에 기록될 만큼 그 위상이 대단했었다. 그런데 무엇이 계기가 돼 상주가 지리멸렬하게 역사의 뒷전에서 서성이게 됐는가를 회고해 보자. 특히 위정자나 사학자 입장에서는 진지하게 그 원인을 진단하고 분석해 대책을 내놔야 할 지대한 의무가 있다.필자가 바라본 상주, 문경의 위상하락은 일제식민지가 전개된 이후부터였다. 구한말 일제는 러시아의 남하를 막으려는 영국과 동맹을 체결했다. 청(淸)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조선을 청으로부터 분리시키고 러시아와 제휴를 저지하기 위해 온갖 애를섰다. 마침 영국과 미국의 양해와 협력 아래 조선을 병탄하면서 그들은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임진왜란 때 실패한 원인을 군사적 무위와 함께 역사적 당위성을 확보하지 못한데서 찾았다. 그래서 요시다 쇼인을 비롯한 명치유신의 원로들 복안대로 정한론의 명분을 찾기 위해 임나일본부라는 희대의 역사공작을 진행했다. 일본서기를 바탕으로 일본을 천하의 중심에 두고 특히 한국을 그들 역사의 아류(亞流)로 집어넣는 공작을 20여 년에 걸쳐 치밀하게 했다. 한사군을 중국 하북지방에서 평양으로 옮기고 한반도 남부를 4~6세기에 걸쳐 일본이 식민통치했다고 역사를 만들었다. 여기서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이 바로 함창고녕가야의 삼국사기 기록과 삼국유사 기록이다. 이들 기록에 의하면 1세기 무렵 상주 함창지방에 고로왕에 의해 고녕가야가 건국됐으며, 3세기 말에 멸망했다는 것이다. 지도와 명칭의 변천사까지 아주 구체적이고 치밀하게 적고 있다. 더군다나 상주 함창에는 3천여 기의 고분이 있고 고로왕릉과 왕비릉이 있다. 공갈못이라는 고대 저수지가 있고 가야를 상징하는 성혈석(星穴石)과 흙으로 조성된 고성(古城)이 있다. 일제는 차도살인격(差度殺人格)으로 이병도와 신석호 등 그들이 키워놓은 조선인 소장학자들을 앞세워 일본의 나팔수로 내세웠다. 해방되기까지 40년을 일본의 입맛대로 우리역사를 조작하고 디자인해서 조선인들을 쇄뇌시켰다. 특히 해방된지 80년이 돼가는 지금까지도 그들이 짜놓은 역사틀을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바뀐 것이라면 일본어에서 한국어로 바꿨다는 사실 외에는 99퍼센트 일본이 짜놓은 역사의 레일을 달리고 있다. 조선의 마지막 총독인 아베 노부유끼는 그들이 전쟁에서 졌지만 결코 조선에 진 것이 아니므로 반드시 돌아오겠다고 호언하고 떠났다. 그는 총칼보다 더 강한 황국의 역사를 심어놨으므로 앞으로 조선은 그들이 깔아놓은 역사의 레일을 100년은 더 달릴 것이라고 호언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베총독의 말대로 일본이 점령한 지 100년, 해방된 지 70여 년이 지났는데도 일제가 깔아놓은 역사를 배우느라 조선의 젊은이들은 혼을 잃었다. 한 예로 일제는 한반도 남부의 고(古)지명을 일본서기 지명을 적용시켰는데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으며 고지도(古地圖)에 그대로 병기하고 있다. 여기에는 어느 사학자도 예외가 없으며 그들의 지침을 부정하거나 공격하면 사학계에 발을 붙이지 못하는 해괴한 망극이 자행되고 있다. 특히 김해박물관을 비롯한 가야박물관에는 예외없이 일본서기(日本書紀) 지명을 인용하고 있다. 이병도를 이은 김현구, 김태식, 이영식을 비롯해 백승옥 등도 한결같이 일제가 깔아놓은 역사레일을 달리고 있다. 문경은 호로국, 김천은 감로국, 경산은 탁순, 대구는 탁국, 고령은 가락국, 창녕은 비자발, 합천은 다라국, 함안은 안라국, 김해는 남가라, 하동은 대사, 영산은 탁기탄, 의령은 임례국, 함양은 졸마국, 진주는 자타국, 사천은 사물국, 고성은 고차국, 합천삼가는 사이기국, 삼랑진은 마차혜, 밀양은 주봉, 의령부림은 산반하국, 순천은 사타국, 광양은 모루, 해남은 침미다례, 남원은 기문국, 장수는 반파국, 등 이렇게 일본서기에 나오는 지명을 우리나라 남부지방에 비정했다. 일제의 입장에서는 조선을 병합하고 통치하기 위한 정책이었다면 현재 한국사학자들이 이를 수용하고 추종하는 이유와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 입장에서 반민족, 반국가 역사를 계승하고 고착하려는 그들은 매국노라는 호칭 외에는 달리 부를 수 있는 명칭이 없다. 일본군국주의와 조선총독부에 의해 함창고녕가야는 삭제됐으며 일본을 추종하는 반민족 사학자들에 의해 고녕가야는 역사 아닌 역사로 고착됐다.지금도 상주를 비롯한 우리사회는 반민족, 반국가 사학자들이 도처에 둥지를 틀고 앉아있다. 일본을 위한 반민족 역사를 실증사학이라는 리본을 붙여 그 뒤에 숨어서 이 나라를 좀먹게 하고 있다. 상주·문경의 지자체장과 학예사, 관계공무원 등 실무진들은 각성하고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는데 전심전력하기를 기대한다. 해방된 지 80여 년이 지나도록 상주·문경의 원로·유지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일제가 만들어놓은 반민족사학과 우리의 정통역사를 구별하지 못하고 남의 일처럼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해서야 되겠는가? 어찌 문경을 일러 삼국지의 호로국이라 하며 대구를 일러 일본서기의 탁순국이라 지도에 그려 넣어도 꿀먹은 벙어리가 됐는가? 모두가 각성하고 함창고녕가야 역사를 복원하면 100조 프로젝트의 밑그림이 장대한 위용을 드러낼 것이다. 동북아시아에 욱일승천하는 웅주거목(雄州巨牧)의 진면목을 보게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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