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에게 겨울배추는 詩다어린 모종에서 한 포기 배추가 될 때까지손을 쉬지 않는 저 끝없는 퇴고노란 속이 꽉 찬 배추를 완성하기 위해손등 갈라지는 노역의 시간이 있었으니배추는 이 겨울 빛나는 어머니의 詩가 되었다나는 한 편의 詩를 위해등 굽도록 헌신한 적 없었으니어머니가 온몸으로 쓰신 저 푸른 詩 앞에서뜨거워진다, 사람의 詩를 이제 사람은 읽지 않지만자연의 詩는 자연의 친구들이 읽고 가느니새벽마다 여치가 달려와서 읽고사마귀도 뒤따라와서 읽는다 그 소식 듣고 밤새 기어온 민달팽이도 읽는읽으면서 배부른 어머니의 詩시집 속에서 납작해져 죽은 시가 아닌살아서 배추벌레와 함께 사는살아서 숨을 쉬는 저 詩<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농약을 전혀 쓰지 않은 유기 농업을 지어 본 사람은 안다. 땅과 말하고 하늘과 손잡을 줄 아는 농사를 짓는 일을 유기농업이라고 한다. 유기농업은 자연을 그대로 살리고 벌레를 살리고 벌을 살리고 나비를 살리며 사람을 살게 하는 농사가 유기 농업이다. 그렇게 농사짓는 대지에 시를 쓰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온몸으로 쓰는 시란 흙 위에 나의 손맛을 내기 위해서 내 발로 내 손가락으로 있는 힘을 다하여 일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온몸이 자연과 화합하느라 등 굽고, 손 트고, 얼굴을 거뭇거뭇 태우기도 한다. 그 흙에다 어머니는 온몸으로 시를 쓰신다. 가장 잘 쓴 시는 어머니가 만든 시다어린 모종에서 겨울 배추가 되는 일이 완성으로 가는 길이다. 습작에서 시가 완성 되어 가듯이 몇 번의 수정(修政)과정을 거쳐 배추도 완결 되어가는 모습을 갖춘다. 배추 노란 속을 꽉 채울 때 까지 어머니의 노역은 끝이 없다. 사람이 쓴 시는 몇 분 안 되는 사람들 밖에 읽지 않으나 자연의 시는 자연의 친구들이 대부분 다 읽고 간다. 어머니에게는 자연의 친구들이 많다. 어머니의 쓴 시를 새벽마다 여치가 읽고 가고 사마귀도 읽고 간다. 느리게 걸어 온 민달팽이도 천천히 음미한다. ‘읽으면서 배부른 시’는 어머니의 시 밖에 없을 터, 시집 속에 납작해져 죽은 시가 아니고 배추벌레와 함께 살아 숨 쉬는 시가 늘 경이롭다. 어머니의 시는 겨울배추 속에 영글어가고 그 시를 먹는 사람은 마음이 영글어 간다. 그래서 어머니가 쓴 시는 참 맛있다. 어머니의 질긴 사랑이 겨울배추 안에 옴팡 들어 있기 때문이다. 퇴고를 마친 시처럼 겨울배추 한포기 가져다 밥상을 푸르게 물들이고 싶은 겨울 초입이다.<수필가 박모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