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도시 캄포나라야는 고요하고 적막하다. 거리에 사람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간간이 지나가는 차량들 외에는 길도, 건물들도 숨을 죽이고 있다. 마치 우리나라 민방공훈련 중 공습경보라도 내려진 마을 같다. 첫 번째 알베르게가 굳게 문을 닫아 걸고 있었다. 아무리 두드리고, 소리치고, 뒤를 돌아가 보고, 다시 앞으로 와 봐도 반응이 없다. 체력도 다 떨어져 가고 투둑투둑, 빗방울도 떨어지기 시작한다. 콜룸브리아노스의 바 호스트 말로는 이곳에 알베르게가 두 개 있다는데 그 중 하나가 문을 닫았다면 낭패다. 다른 하나의 알베르게가 문을 열었을지, 열었다고 해도 내게 돌아올 베드가 남아 있을지 걱정이다. 아까부터 얼핏얼핏 보이던 다른 순례자 하나가 이쪽으로 다가온다. ‘닫혔어?’ 그가 물었다. ‘아마도….’ 내가 난감한 표정으로 대답하자 그는 지체 없이 가던 길을 간다. 나는 다른 알베르게를 찾느라 주변을 배회한다.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아까 그 순례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디로 간 걸까. 그의 걸음은 뚜렷한 목적지가 있는지 확신에 차 보였다. 그를 따라갈 걸 그랬나. 그가 간 방향을 살펴봐도 거리엔 고양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순간 세상에 나 홀로 남겨진 기분이 든다. 오랫동안 내 의식을 지배하고 있던, 벗어던져버리고 싶었던, 다시는 만나고 싶지도, 기억하고 싶지도 않았던 그 기분이었다. 이대로 있을 순 없다. 어디로든 가야한다.
감찰기관인 사감원으로 ‘이첩하라.’는 ‘집개’의 요구를 받기 무섭게 집행부는 예쁘게 ‘토스’했다. 중재를 하거나 붙들고 앉아 제대로 조사해 볼 능력도, 배짱도 그들에겐 없었다. 오히려 ‘신진필’ 진영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눈치 보기에 급급했다.‘십진필’이 장악한 사감원으로 송치되는 순간 모든 것은 끝난 셈이었다.조사는 ‘집개’의 하수인들이 맡았다. 하나는 ‘집개’의 지령을 받고 걱정해 주는 척 접근해 ‘스모킹 건’이 있는지 염탐해 간 ‘집개’의 ‘졸개’였다. 다른 하나는 표리부동과 의뭉함으로 널리 알려진, 야비다리가 심한 인물이었다. 그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허위로 만들어낸 근거 없는 모함’으로 결론짓고 징계를 내렸다. 두 번째 ‘헬 게이트’가 열렸다. 5년 만에 지옥에서 더 깊은 지옥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또다시 세상 한 쪽이 무너졌다. 사람들에겐 머리위의 구름 하나가 떠가는 일이었다. 나는 잉여였고 구우일모였다. 아무리 둘러봐도 비대발괄할 대상도 없었다. 딱 한 사람 떠오른 얼굴이 있었다. ‘거털먼’(거꾸로 매달아 놓고 털어도 먼지 한 톨 나오지 않을 사람)이었다. 심지가 곧고 강직해서 산을 산이라 하고 물을 물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하루빨리 종조의 유법인 출가문을 열어야 한다.’며 재가수행자만으로 구성된 집단의 한계를 지속적으로 지적해 온 사람이기도 했다. 출가를 부담스러워 하거나 출가자를 받았을 때 일어날 자신들의 위상변화가 두려워 쉬쉬하던 사람들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평생을 바쳤던 곳에서 온갖 오물을 뒤집어쓰고 내몰리는 순간까지도 인간의 품격을 잃지 않았던 사람이기도 했다. ‘십진필’의 ‘비릿한 냄새’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는 끝까지 함구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남을 밟고 지나가는 것이 일상인 집단의 풍토에서는 다시 나오기 어려운 유형의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너무 멀리 있었다. 사방에서 초나라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고립무원의 섬뜩한 공포감이 덮쳐왔다. 정문을 들어서다가 ‘홍위병’들에 의해 밀려나 눈물을 흘리며 돌아선 ‘거털먼’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지만 나에게는 이것만으로도 감당하기 벅찬 고통이었다.나는 ‘공동체를 무너뜨릴 수 있는 문제를 인지하고도 침묵하고 있어야 했느냐?’ ‘도대체 나의 죄가 뭐냐?’고 항변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말하는 듯 했다. ‘너의 죄는 너다!’그들에게 나는 신발 속 돌멩이였다. 종단기원 61년에 발생한 ‘61내전’(또는 ‘육일사화’) 이후부터 집요하게 신문, 잡지 등 내부매체를 통해 비겁하고, 비굴하고, 비열하고, 비정하고, 비루한 ‘5비 잉간’의 행태를 꼬집어 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은 ‘용서받지 못할 죄’였다. 그런 ‘죄인’이 그물에 걸렸는데 때깔 나는 ‘진주 두 알’까지 물고 있으니 얼마나 유쾌상쾌통쾌했을까. 일부에서는 등 뒤에서 ‘혼자만 의로운 척 하다 과보 받았다.’고 수군댔다. 1차 지옥행 때 ‘자폭테러’라며 나를 염려해 주는 듯 했던 이는 먼 객석에서 ‘안전모’를 눌러쓴 채 턱을 괴고 조용히 ‘관전’했다. 이번 사태 초기 상황에 간접적으로 연루돼 있던 이는 숨도 크게 쉬지 않고 죽은 듯이 엎드려 있었다. 그때도 지금도 그들을 생각하면 애잔하다.나는 또 한 번 ‘잉간’ 앞에서 절망에 떨어야 했다. 지옥에서 더 깊은 지옥으로 내던져진 사실보다도 사람에 대한 환멸이 더 나를 힘들게 했다. 법당에 앉으면 기도는 겉돌았고, 염송은 헛돌았다.‘십진필’은 잃었던 권력을 손쉽게 되찾아 영구집권의 기틀을 마련했다. 주구들은 치열한 논공행상 끝에 한 자리씩 꿰찼다. 헤게모니 다툼이 시작됐다. ‘투견대회’에서 탈락한 ‘집개’는 ‘병든 시골 개’로 전락했다. 그날부터 ‘병든 시골 개’는 연일 서울 쪽을 향해 짖어대기 시작했다. 친일 순사가 갑자기 항일투사 된 듯 그는 난데없이 ‘종단 민주화’를 거론했다. 전화를 걸어 딱 한 마디를 해 주었다. ‘그 입에서 나올 단어가 아니다. 부끄러운 줄 알아라.’‘십진필’은 입법부와 사법부까지 완벽히 틀어쥔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자가 되었다. 권력의 아우토반을 무한 질주하던 ‘십진필’의 말로는 뻔했다. 2인자로 키웠던 자를 비롯한 주구들의 배신, 언론에 보도된 혈육의 추악한 범죄(오랜 측근이자 주구의 제보였다는 은밀한 소문도 있다) 등으로 몰락했다. 하지만 그것이 말로라는 보장은 없다. 그를 비롯한 ‘홍위병’과 그 주구들의 진짜 말로는 아직 오지 않았다. 법계의 CCTV에는 사각지대가 없고, 인과에는 공소시효가 없기 때문이다.아까 다른 순례자가 사라진 까미노 진행 방향으로 무작정 걸었다. 다행히 얼마가지 않아 도로 우측에 라 메디나 알베르게가 보인다. 입구의 바를 통과해 안으로 들어가니 리셉션이 있다. 아까 그 순례자가 막 체크인을 마치고 2층 계단을 오른다. 가까스로 체크인을 하고 짐을 풀었다.
바에서 저녁을 먹고 건물 뒤쪽 세탁장으로 간다. 깔끔하고 반듯한 사각의 잔디정원이 꽤 넓다. 야외 테이블도 있고 화단의 경계석 위에 형형색색의 자전거를 일렬로 세워 제법 멋스럽게 꾸며놓았다. 한쪽엔 그네도 매달아 놓았고 목각 사슴 조형물을 동상처럼 세워놓은 것도 신선하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