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몰래 조금은 늦은 것들이 있다늦게 온 것들은 고요하고 스산하다철쭉도 다 간 시절에 자줏빛 등불 밝힌자목련이 지키는 이슬 내린 화단에 앉아내 생에 너무 일찍 사라진 인연과때로 너무 늦게 찾아온 인연을 생각한다꽃의 소식에 밖을 향한 눈을 감는다사랑하고 이별하는 순서를 정하듯이누가 꽃들의 호시절을 정하였을까따사한 햇살 없이 피고 지는 꽃 있듯이행불행을 훌쩍 건너갈 수도 없는 사람이다가만히 가슴 두드린 문을 열어주면삐죽하게 고개를 들이밀던늦은 손님을 대하듯 나는 물끄러미 앉아꽃잎들이 물오르는 소리에 젖는다천천히 취하려 애쓰는 이들을 생각하며바삐 지나가는 발자취에 꽃 소식을 부친다늦은 소식은 다시 소문이 될 터이지만그늘에서 켜드는 꽃등은 외로이도 환하다먼저 간 꽃잎들의 흔적이 역력할 때늦은 개화에 기댄 저 후생이 궁금하다<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성급함은 죄악이다.”라고 누군가가 말했다.즉 성급하게 내린 판단은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상흔을 남긴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성급함은 깊이 없는 판단의 결과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깊이 새겨 볼 말이었다. 늦은 것은 판단의 신중함을 의미하므로 답답함은 있어도 큰 실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꼭히 접수해야 할 공적인 일들을 빼놓고는 일상생활을 쫒기듯 급하게 움직이고 성급하게 판단내리지 않는 것이 자신을 편안하게 놓아주는 일이라고 보는 시각인 것이었다. ‘늦게 온 것들은 고요하고 스산하다’ 는 시인의 말을 곰곰 생각해본다. 빠른 것은 부산스럽고 요란하지만 늦은 것은 천천히 움직이고 조용하며 느리다는 것. 마치 숨죽이고 있는 듯 스산해 보이기까지 한다는 것. ‘천천히 취하려 애쓰는 이들을 생각’하는 시인은 ‘늦은 꽃’을 보며 ‘너무 일찍 사라진 인연과 때로 너무 늦게 찾아온 인연’을 되새겨보는 시간을 갖는다. 그 인연들과 함께 어느 새 지나가버린 세월을 되짚어 본다. 어차피 지나가는 세월인데 거기에 동승해서 이유 없이 바삐 자신의 삶을 지나쳤음을 느끼는 것이다.일찍 핀 꽃이 일찍 진다면 천천히 피고 늦게 질 일이다. 늦은 꽃일수록 눈이 부실 때가 많다. 훨씬 아름답게 보일 때가 있는 것이다. 늦게 피어나는 꽃처럼 우리 삶도 나이 들어 갈수록 서서히 꽃을 피워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만 같다. ‘늦은 꽃’일수록 그럴 것만 같다.<박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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