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것도 ‘바라는 것’에 들어간다면 조르바에 대한 오마주를 취소하거나, 저 깨알 같은 ‘바라는 것’들을 당장 폐기처분해야 하건만 아직 하나는 통 자신이 없다. 그냥 ‘뭉개고’ 가고 싶은 유혹도 인다. 하지만 일단은 둘 중 하나를 포기한다. 언젠가는 둘을 맞바꾸는 시간이 오기를 고대하며.폰세바돈의 첫 번째 온전한 건물이 알베르게다. 길가에 바투 붙어선 단순한 사각의 2층 벽돌건물이다. 오늘은 여기서 내 영혼이 쉬어간다. 짐을 풀고 보니 이제 갓 12시를 넘겼다. 까미노 일정 중 가장 이른 도착이다. 바에서 간단히 요기 하고 입구 앞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잠시 쉬고 있자니 지친 순례자들이 하나 둘 마을로 들어온다. 그중에 중년의 한국인 친구 두 사람이 투숙한다. 친구 중 한 사람은 까미노 후반에 부인과 합류하기로 약속하고 그 날짜에 맞춰 가고 있다고 한다. 까미노를 친구와도 걷고 아내와도 걷는 일은 특별하다. 일석이조라더니 친구도 잡고 아내도 잡은 그의 수완과 행운은 더욱 특별하다.1시쯤 길 건너 맞은 편 세탁장에 가기 위해 알베르게 2층 계단을 내려가다 막 체크인을 하고 올라오는 반가운 얼굴과 마주쳤다. 부르고스에서 처음 만나 헤어진 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길 포식자’ 정진규 선생이다. 프랑스 아헤스에서부터 1,100여 킬로미터를 걸어왔다던 정 선생은 부르고스에서 하루를 묵은 다음날 신부님에게 그날 하루에 40킬로미터를 간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었다. 부르고스에서 40킬로미터 지점은 까스뜨로해리스다. 다음 날 신부님과 내가 거쳐 가며 까미노 덕후 정화 씨를 만나게 되는 지점이다. 그렇게 앞서가는 정 선생을 만날 일은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만나게 되다니 역시 ‘만인어만 못인어못’(만날 인연은 어떻게 해서든 만나지고, 만나지 못할 인연은 어떻게 해도 만나지지 않는다)이다.정 선생은 ‘경쟁적으로 걷다보니 많이 지쳤다.’며 오히려 내게 ‘빨리 오셨다.’고 놀란다. 자신이 오늘 이 알베르게에 마지막 투숙객으로 체크인 했는데 나를 만나게 됐다며 반가워한다.단체로 저녁을 먹는 자리가 혼잡하다. 정 선생의 말대로 알베르게가 만원이긴 만원인가 보다. 다닥다닥 붙어 앉아 뭔가를 부지런히 먹은 것 같은데 뭘 먹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테이블 맞은편에 앳된 미소년 풍의 서양 청년 하나가 밥 먹는 내내 대화가 없다. 밥 먹을 때는 말을 하면 안 된다는 유교식 교육이라도 받은 걸까. 일행 없는 나 홀로 순례자라서 낯가림이 심한 걸까. 나도 정 선생을 비롯한 한국인 중년 친구 두 사람과만 간간이 대화할 뿐이어서 허투루 보이지 않았다. 혹시 영어권 청년이 아닌가? 혼자라도 언어만 통하면 지옥에서도 친구를 만들고 싶어 하는 나는 별 생각을 다 하는 ‘오지라퍼’다.이 날을 어떻게 보내고 잠 들었는지 모르겠다. 단지 정 선생이 근처 2층 침대를 배정 받아 함께 잠 들었다는 것만 기억에 남아 있을 뿐 다음날 아침 정 선생이 먼저 떠났는지 내가 먼저 떠났는지도 가물가물하다.오랜만에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7시쯤 느지막이 출발한다. 오늘은 해발 1,500미터 산 정상을 넘어 내리막길을 따라 엘 아세보 데 산 미구엘, 리에고 데 암브로스, 폰페라다를 지나 콜룸브리아노스까지 32킬로미터를 가기로 한다.1,500미터 산 정상은 싱겁게 넘었다. 이미 폰세바돈 마을이 1,200~1,300미터가 넘는 곳이어서 산책하듯 가볍게 걸었다. 작은 마을을 빠져나가자마자 정상으로 부드럽게 S자로 휘어져 올라가는 넓은 길이 순례자의 혼을 빼놓는다. 숲으로 덮인 산 정상께 까지 노란 후리지아가 점점이 박혀 있어서 마치 거대한 식물원에 들어서는 느낌이다. 하늘을 배경으로 가까이 내려 앉아 있는 산정상도 순례자의 걸음을 가볍게 해준다. 이렇게 편안하게 정상을 허락해 주는 산이라니. 아무리 봐도 해발 1,500미터 산의 고압적인 느낌이라고는 전혀 없는 나이스한 산이었다. 어제 폰세바돈 마을로 오르는 길도 오르막이라는 기분이 들지 않을 정도로 완만하고 부드럽게 받아주더니 남은 길도 이리 너그럽게 내어주고 있다. 다락방 같은 산이다.
출발한지 20분 정도 지났을까 산 정상쯤에 하늘 높이 솟아 있는 ‘이라고 철 십자가’가 보인다. 돌무더기 위에 선 긴 목재기둥 위에서 철 십자가가 세상을 굽어보고 있다. 몇몇 순례자들이 기둥에 무엇인가를 부착하는 모습이 성스럽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나무 틈새마다 동전과 작은 돌을 끼워 놓았다. 갖가지 기원문과 리본도 달고, 까미노 시그니처 가리비 껍데기도 달아 놓았다. 모두 순례자들의 소망을 담은 것들이다. 기둥아래는 순례자들이 자국에서 가져온 조약돌들이 수북이 쌓였다. 하나같이 동글납작 단정하고 반드럽다. 돌 마다 깨알 같은 소망들이 적혀 있다. 한국인 중년 친구 두 사람도 기둥에 동전인지, 돌인지 진지한 표정으로 무엇인가를 끼워 넣고 있다. 철 십자가 기둥에 경건하게 상징물을 부착하는 순례자들을 촬영하는데 정 선생이 나를 찍어 주겠다며 돌무더기 위로 올라가라 한다. 기둥에 손을 짚고 사진을 찍기는 했다. 명품 사진을 찍어 준 정 선생이 고맙다. 문제는 여기서 어떻게 정 선생을 만나게 됐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는 거다. 아침에도 누가 먼저 알베르게를 나섰는지도 모르겠고, 여기서도 어떻게 만났는지 모르겠다. 칼사디야 이후부터 메모를 거의 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내 부실한 기억력 탓도 크다. 분명한 건 철 십자가에서는 내가 먼저 출발했다는 사실이다.정상을 넘어 돌길을 조금 내려가자 아스팔트길이 나오고 곧 만하린 마을의 알베르게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움막 같은 건물 몇 동이 숲에 가려진 채 서 있는 모습이 어설프다. 주위는 온통 중세의 순례자들을 지켜주었던 템플 기사단의 깃발로 어지럽다. 게다가 각국의 국기와 현수막, 펼침막, 유명 도시까지의 거리를 표기한 이정표등이 무질서하게 서 있다. 흡사 네팔 카트만두의 일부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만하린 알베르게를 지나자 다시 숲길로 접어들더니 완만한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길은 ‘철 십자가’로 가던 길과 유사하다. 바이크를 타고 가도 휘파람 불며 갈 수 있을 정도로 여전히 너그럽다. 까미노 첫날 넘었던 피레네 산맥 ‘나폴레옹 루트’의 풍경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자연이 주는 풍성함을 누리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운치를 더해 준 운무의 역할도 크다.사진만으로는 부족해서 동영상을 켜고 유튜버 행세까지 해가며 다양한 초목들의 향연을 담는다. 그러다 뭘 잘 못 만졌는지 초라한 행색의 ‘늙은이’ 하나가 갑자기 화면에 나타난다. 당황하는 소리와 함께 ‘자기 얼굴보고 자기가 놀라는 건 나밖에 없을 거’라고 키득거리며 촬영을 이어간다.산이 거의 없는 까미노에서는 물론이고 국토가 온통 산으로 뒤덮인 한국에서도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분위기다. 너그러운 길이 주는 고마움과 숲이 주는 아늑함을 만끽하며 걷는 길은 신에 대한 기도 없이도 천국에 들 수 있게 해 줄 것 같다.내려가는 길은 한동안 돌길이 이어져서 꽤 불편하고 힘이 든다. 어제 그 컨디션으로 이 길을 내려갔다면 크게 애를 먹을 뻔했다. 폰세바돈에서 여장을 푼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러고 보니 알베르게가 붐볐던 이유가 있었다.어느새 흙길로 바뀌면서 완만하게 내려가는 길에 만난 풍광은 피레네 산맥이 부럽잖을 정도로 빼어나다. 나무가 사람의 키를 넘지 않아 산 속에서도 산을 볼 수 있어서 좋다. 능선을 따라 구비 돌아가는 붉은 길이 펼쳐진 모습을 내려다보며 걷는 것도 좋다. 앞에는 판초우의를 둘러쓴 순례자가 발끝만 내려다보며 걷고 있다.(계속)